도로는 미끄러지듯이 주행할 수 있는 곳이다. 또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해야 도로의 순기능을 다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도로라고 해서 자동차만의 전유물은 아닐 것이다. 특히 사람의 안전을 도모해야 하는 경우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사람과의 관계를 위해서 생각해 낸 방식 중 하나가 과속을 방지하기 위해 도로에 일정한 형식으로 시설한 과속방지턱이다. 그런데 과속방지턱의 시설 설치형식은 잘 규정되어 있지만 제대로 시공되고 있는 것은 없는 듯하다. 속도를 줄여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과속방지턱은 자동차에 충격을 주고 탑승자에게 불쾌한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과속방지턱을 정밀하게 시공한다면 이런 것은 훨씬 저감될 수 있을 것이나 현실적으로 그렇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과속방지턱을 시공하지 않고는 자동차의 속도를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일까? 운전자 누구나 경험하듯이 도로상에는 노랑과 흰색이 교차되어 표시되어 있는 소위 ‘가짜’ 과속방지턱이 있다. 가짜인줄 알지만 속도를 줄이게 되고, 혹은 진짜인줄 알고 속도를 줄이고는 쓴웃음을 짓기도 한다. 이러한 ‘가짜’ 과속방지턱이 있는 곳에도 상당수의 경우 과속방지턱이 전방에 있다는 교통 표지판이 설치돼 있기도 하다. 실제로는 과속방지턱이 없지만 과속을 방지하는 기능을 훌륭하게 해 내고 있다. 진짜가짜의 논의를 떠나서 우리가 과속방지턱을 안내하는 교통표지판을 설치하고, 도로의 바닥에 노랑과 흰색이 교차하는 표시를 하고, 이것을 과속을 줄이라는 우리의 약속이라고 한다면 도로의 순기능을 다하면서도 과속을 방지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를 생각해 보자. 신호등이 없어도 횡단보도가 그어져 있는 도로에서는 운전자는 좀 더 신중하고 속도에도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그것은 횡단보도는 사람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곳이고, 또 법으로 횡단보도 상에서의 사고는 가중처벌이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현대생활은 일종의 약속과 규칙과 같은 소프트(soft)한 것으로 더 많은 제재나 조정을 하게하고 있다. 모든 것을 물리적 시설로 제재한다는 하드(hard)적인 처리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실제로 필요치 않는 경우도 많다. 우리가 생활하는 도시공간은 이처럼 물리적 제재보다는 소프트한 처리로 공간을 다루는 것이 필요하고, 소프트한 처리가 많은 도시일수록 명품도시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소프트한 처리만으로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도 없지 않을 것인데, 그런 경우라면 도로의 포장방식을 바꿔서 해결할 수 있다. 포장방식의 변경은 승차의 쾌적함을 반감시킬 수 있지만 과속방지턱과 같은 기계적인 충격은 없게 된다. 비용대비 효과 면에서도 소프트한 방식과 더불어 효과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과속방지턱이라는 물리적 시설을 선호하는 사람들의 생각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소프트한 처리를 지켜주지 않기 때문에 과속방지턱을 설치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과속방지턱은 어디에 설치해야 하는가가 관건이 된다. 현재 도로에 설치돼 있는 과속방지턱은 대체로 주도로 상에 설치돼 있다. 도로는 주도로와 지선도로라는 계층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과속방지턱을 설치해야 한다면 지선도로에 설치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예를 들면,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에는 정문이나 후문 출입구 부분에 과속방지턱이 있어 주도로 진입에 신중을 기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아파트 단지의 경우 출입구에 과속방지턱을 만들기보다는 주도로에다 과속방지턱을 설치하게 함으로써 주도로 상에서의 통행에 불편을 주고 있다. 아파트 단지의 경우를 예로 들었지만, 과속방지턱이 시설되어 있는 곳은 거의가 지선에서 주도로의 진입을 신중히 유도하기보다는 주도로에 설치해 도로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과속방지턱의 신중한 설치와 운용은 주민의 안전성과 편의성을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도시공간의 명품화를 좌우하는 한 작은 요소다.

박봉우 (강원대 명예교수·숲과문화연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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