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작업실] 수학선생 시인 조성림
[작가의 작업실] 수학선생 시인 조성림
  • 오동철 시민기자
  • 승인 2016.08.04 21: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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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원리가 문학의 분석과 通하다

겨울 외딴집
나뭇가지에서 하루 종일 등불을 밝히던 홍시가
느닷없이 찾아온 직박구리에게
말 한 마디 없이
붉은 가슴을 내어주고 있다

봄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꽃잎의 화살로
공중에서 지은 하늘농사

그 애지중지한 속살을
연애처럼
선뜻 내주고 있다

그 겨울 부리에 전율한 듯
검은 씨앗 한 알 툭,
세상으로 낙하하고 있다

- 붉은 가슴(2016년 신작 시집 《붉은 가슴》 중에서) -


강원대학교 사범대학 수학교육과를 졸업하고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던 조성림 시인. 초년 교사 시절 탄광촌으로 발령을 받으며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쓰기 시작한 편지가 수학선생 시인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선사했다.

사진=김남덕 시민기자

1978년부터 시인인 정종화 선생과 20여년 주고받은 편지가 후일 시인으로 등단하게 된 밑거름이 됐다. 시인은 수학선생 출신이라는 이력에 대해 어려서부터 시에 대한 관심이 많았지만 이과로 진학하면서 꿈을 잠시 접고 있었다. 교편을 잡고 편지글을 쓰면서 준비한 20년 이상의 시간이 어릴 적 꿈이었던 문학으로 이끌었다.

그렇게 시작된 시인의 등단은 2001년에야 완성된다. 강원일보 신춘문예 본선에 올라가며 시인의 자질을 보였고, 2001년 문학세계 신인상으로 등단에 이른다. 시인의 시는 늘 함축된 메시지를 담으려 한다. 나열되지 않으면서 함축된 언어에 메시지를 담으려 하고 있다. 그런 시인의 문학은 수학이라는 논리학문이 밑바탕이 되었을 수도 있다. 수학과 문학이라는 이질적 정서는 일정부분 괴리가 있다. 그런 이유로 처음 시를 시작할 때는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수학의 원리나 문학의 분석적인 면은 상통하기도 한다. 이런 특성이 함축된 시를 쓰는데 도움이 됐다. 조병화 시인도 물리학과 출신이었음을 상기했다. 수학이 문학적 분석에 도움이 됐다! 흥미 있는 말이다.

처음 시를 공부할 때는 시를 길게 써 지적을 많이 받았다. 그렇게 시인은 20년의 수련과정을 거쳤다. 그래서 시는 ‘함축된 언어를 통해 메시지를 전하는 도구’라고 생각한다.

시인은 지금까지 《지상의 편지》를 시작으로 6권의 시집을 발간했다. 그의 시 속에는 시인이 부임했던 지역과 학교, 학생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20년 이상의 교류로 이어진 인연으로 찾아간 천안의 기억을 담은 《천안행》이 시집에 담겼고, 신포중학교 재직 중의 이야기가 담긴 《호숫가 편지》도 있다. 정선에서 근무할 당시의 기억을 새긴 《정선별곡》도 있다.
‘정선별곡’을 읽으면 정선 임계의 풍경과 삶이 한 눈에 압축돼 다가온다.

이제는 웬만하면 잊힐 만도 한데
눈으로 뒤덮인 삽당령에서
임계 아우라지 나전 비행기재를 빠져나오는 길이
저 여름의 보에서 푸드덕 뛰어오르던
어름치 내장을 서늘히 통과하는 일과 같아
그 밤 저물도록 수저로 뜨던 숱한 별들이 아직 뒤척여
어쩔 건가, 왕방울로 산 비알 쟁기 끌던 소 눈을 어쩔 건가
나도 아직 나를 건너지 못한 계곡의 푸른 물줄기들,
내가 끝내 너에게 가서 지워질 아라리 한 자락,
푸르러 끝끝내 운다


시인이 생각하는 문학은 삶의 근본적인 면을 드러내 위로해 주는 것이다. 그런 의미로 독자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시를 쓰고, 내면의 이야기를 끄집어내야 한다고 후배들에게 조언한다. 시인이 시를 쓰는 이유는 작업을 통해 인생의 소중한 부분을 이끌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시인이 애착을 가지는 시는 ‘천안행’이다. ‘천안행’은 정종화 선생을 만나기 위해 찾아간 천안에서 궁남지와 금강을 돌아보며 느낀 감정을 담아낸 시로, 정종화 선생과의 20년 넘는 인연이 각인돼 있다. 시인의 새로운 시집을 펼치니 현재의 이력에 눈길이 간다. “홍천여자중학교에서 아이들을 사랑하고 있다.” 40여년 교편을 잡고 살아온 시인의 이력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조성림 시인은 1955년 춘천에서 태어났다. 강원대 사범대학 수학교육과를 졸업하고 교편을 잡은 지 내년이면 교사생활 40년의 정년을 맞이한다. 2001년 문학세계 신인상으로 등단한 후 《지상의 편지》, 《세월 정류장》, 《겨울노래》, 《천안행》, 《눈보라 속을 걸어가는 악기》 등 5권의 시집을 냈고, 올해 5월 《붉은 가슴》을 출간했다.

오동철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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