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 건물 뒤편에는 사계절 물이 마르지 않는 연못이 있었는데, 휴식시간에는 운동장보다 더 좋은 놀이터였다. 방학 전에는 전교생이 모여들어 아수라장이 되곤 했다. 지금은 학교 증축 과정에서 연못이 사라지고 없지만, 당시 수양버들 늘어진 사이를 누비며 이리저리 뛰어 다니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지금은 쉽게 볼 수 없는 왕잠자리는 그때만 해도 조그마한 연못이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쉽게 볼 수 있었다. 내 고향에서는 왕잠자리를 호투라고 불렀다. 어렵게 왕잠자리를 잡으면 거의가 수컷이었다. 욕심 많은 친구가 수컷의 가슴에 호박 꽃가루로 칠을 하면 암컷의 모습과 흡사했다. 실로 다리를 묶어 날려 다른 수컷들이 암컷으로 착각하고 짝짓기를 시도하면, 그때 재빨리 잡곤 했다.

그 당시에는 포충망을 볼 수도, 구입할 수도 없는 때라서 포충망 대신 빗자루를 이용해 포획을 하곤 했다. 날개를 접어 손가락 사이에 서너 마리씩 끼우고 개선장군처럼 으쓱대던 모습들이 지금껏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잠자리류는 반 수서곤충으로 어린 시절을 물속에서 보내고 성충이 되기 위해 물 밖으로 나와 우화(羽化 : 번데기가 날개 있는 엄지벌레로 변함)를 하게 된다. 왕잠자리과에 속하는 곤충은 왕잠자리, 개미허리왕잠자리, 별박이왕잠자리, 먹줄왕잠자리 등 10여종이 기록돼 있다.

알에서 부화한 왕잠자리 애벌레는 작은 물고기나 올챙이를 잡아먹으며 성장을 한다. 성충이 되기 위해 수생식물이나 물가 주변의 나무줄기에 거꾸로 매달려 우화를 시작하는데, 왕잠자리뿐만 아니라 다른 종류의 잠자리도 우화를 하는 시간은 무척이나 위험하다. 왕잠자리는 우화를 시작해 날기까지 약 다섯 시간이 걸리는데, 우화하는 과정에서는 천적이 나타도 도망을 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개미의 공격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하지만 천적의 눈을 피해 우화를 끝마치면 화려한 날개 짓으로 연못 주변을 돌면서 암컷을 기다린다.

이제는 관찰이 쉽지 않은 왕잠자리. 예전처럼 왕잠자리를 쉽게 볼 수 있는 환경이 다시 돌아올 날이 있을까?

허필욱 (강원곤충생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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