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광복은 ‘일본의 패망’과 동전의 앞뒷면처럼 닿아있다. 일본은 종전과 함께 미군 통치하에서 천황제를 유지하는 조건으로 신헌법을 제정했다. 그 헌법 9조에는 일본이 무력을 행사하지 않을 것과 군사력을 갖지 않는다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 이 조항으로 인해 일본은 전쟁을 할 수 없는 국가가 됐다. 다른 국가와는 달리 ‘평화헌법’이라는 별칭이 붙은 이유다. 그런데 최근 아베정권은 언제든 군사력을 갖출 수 있도록 헌법개정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이에 맞서는 저항과 비판이 일본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꾸준히 진행돼 왔다. 윤재선 교수(동북아평화연구소장)는 평화헌법과 이를 지키려는 일본의 시민들에게 노벨평화상을 추천하자는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일본의 평화헌법이 왜 그토록 중요한가? 얼핏 생각해서는 그들의 평화헌법과 우리나라의 평화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려지지 않는다. 

일본의 경제력과 전쟁의 지도를 보면 약할 때에는 움츠러들었다가 강해졌을 때는 항상 외부로 진출했어요.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지금 평화헌법 개정 논의가 거세지고 있어요. 한반도를 중심으로 북한-중국-러시아의 북방 삼각과 남한-일본-미국의 남방 삼각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어요. 100여 년 전 식민시대와 60여 년 전 냉전체제로 회귀하는 모습입니다. 이들의 각축에서 한반도는 전쟁터가 될 것이고, 우리는 이들의 야욕에 의해 대리전을 치를 수도 있어요. 전쟁은 곧 공멸입니다. 승리의 전쟁이란 없어요. 전쟁을 억제하는 것만이 최고의 해법입니다. 그런데 일본이 군사력을 갖는다면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적 균형이 깨질 수 있다는 겁니다. 평화헌법은 일본의 침략야욕을 차단하는 효과가 있어요.

자위대 수준으로도 독도를 위협하는 일본인데 군사력을 제대로 갖춘다면 어떨지 아찔하다. 그런데 그런 일본을 비난하고 비판하는 것도 모자라 그는 평화헌법을 수호하는데 상을 주자고 한다.

참의원 선거에서 아베가 승리했지만, 평화헌법에 대해서만큼은 국민의 50% 이상이 지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일본의 피해국가지만 전쟁을 원하고 그로 인해 자신들의 잇속을 차리려는 일본의 탐욕적인 정치권이 아니라, 평화를 원하는 50% 이상의 시민들과 연대하고 응원해야 한다고 봅니다. 평화는 평화로 지켜야 해요. 힘의 논리에 의한 평화, 승자에 의한 평화(pax)는 누군가의 희생과 피를 요구합니다. 합의로 이루어지는 아가페적 평화(shalom)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할 평화의 방법입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춘천 지역의 대학교수 9명이 모여 노벨평화상 추천서를 보냈습니다. 만약 평화헌법이 노벨평화상을 받게 된다면 아베 정권은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입니다. 다행히 현재의 천황도 평화헌법을 지지하고 있어 일본 내의 분위기를 우호적으로 만드는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그렇다. 평화는 평화로 지켜야 ‘평화’라 할 수 있다.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평화헌법을 지키도록 지지하는 이유가 명백하다. 그런데 그런 글로벌한 문제를 이 작은 도시 춘천에서 시민들과 펼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한민국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입니다. 그리고 강원도는 유일의 분단도(道)이고, 춘천은 그 분단도의 수부도시입니다. 평화를 이야기하기에 춘천보다 좋은 곳은 없습니다. 서명운동을 벌이고 평화포럼을 하는 것은 시민들의 힘으로 평화를 지키자는 마음에서입니다. 시민들의 힘으로 평화헌법을 지키는 운동을 시작한 것은 우리가 최초예요. 일본에서 평화헌법이 이슈가 된 것은 ‘나오미’라는 여성 때문이었어요. 평범한 주부였던 그 여성은 평화헌법이 개정되면, 자신의 아들들이 전쟁터로 나갈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그 과정에서 평화헌법을 지켜온 일본 국민들에게 노벨평화상을 달라는 운동을 시작한 것이죠. 일본과 춘천의 시민들이 평화를 지켜내고 서로를 응원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평화의 바탕이 될 것이라 생각해요. 평화헌법을 일본과 우리나라를 넘어 동북아 전체적으로 확산하고 공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는 힘주어 말한다. 시민의 힘으로, 분단도의 수부도시 춘천에서 평화의 기적을 이뤄내 보자고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정치적 압력과 저항은 거셀 것이다. 그래서 시민들의 연대와 관심을 강조한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11월 경 동북아평화공존포럼을 계획하고 있어요. 평화헌법과 그것을 지키려는 일본 시민들에게 노벨상 추천을 선언하고, 양국 시민사회와 함께하는 서명운동도 꾸준히 할 겁니다. 그리고 평화의 온도탑도 세우고 싶어요. 평화의 온도탑을 만들어 평화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의지를 보여주고, 국제사회에도 압력을 넣고 싶은데 쉽지 않겠지요. 무엇보다 시민 당사자들의 힘이 중요해요. 평화를 사랑하고 지키는 것을 몇몇 정치인들에게 맡겨서는 안 됩니다. 앞으로 양국 시민들 간의 교류 프로그램도 계획하고 있어요. 전문가 집단이나 정치인의 결정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의 연대. 그것이 평화를 지키는 가장 큰 힘입니다.

그는 신북읍의 산천무지개교회라는 열린 예배공간을 마련한 목회자이기도 하다. 교회에는 ‘평화의 샘 ’이라고 하는 한 평 남짓한 묵상과 기도의 공간(위 사진 배경)이 있다. 가장 낮고 작은 공간에서 평화의 외침이 시작되는 게 의미 있다는 생각에서다. 마치 예수가 거리의 사람들을 만나 정의와 사랑의 말씀을 전하듯이, 평화는 권력을 가진 의사결정자 몇몇이 지키는 게 아니라 이렇게 평범한 개개인의 의지가 모여 지켜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평화를 위협하는 주변국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깊은 산골의 어느 샘에서 솟아오른 한 방울의 물이 강물을 만들고 다시 바다를 이루듯이 평화의 샘 또한 춘천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돼 한반도 전체를, 나아가 일본과 전 세계를 평화의 기운으로 채울 날을 기대한다. 곧 광복 71주년이 된다. 광복을 넘어 궁극의 평화, 무력이 아닌 평화에 의한 평화를 다시 생각해본다.

 

 

 

허소영 시민기자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