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일 전 신북읍 유포리에 있는 아침못을 모티브로 쓴 소설이 출간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침못은 신북읍 유포리에 있는 커다란 저수지다. 아침못은 용화산 동남쪽 골짜기 삼한골의 맑은 물을 담아 발산리, 유포리, 천전리, 율문리의 넓은 들판을 곡창으로 만든 젖줄이다. 욕심 많은 부자가 스님을 구박해 하루아침에 큰 비가 퍼붓고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 물속에 잠긴 장자못 전설로 잘 알려진 아침못.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눈을 뗄 수 없었다. 늘 들어오던 이야기, 답사를 다니며 마주한 풍경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문장 하나하나가 시선을 고정시켰다. 오랜만에 춘천을 무대로 한 소설을 쓴 작가를 만나야 했다.

분단이 고착되고 남과 북에 각각의 정부가 수립된 1948년에 신북읍 유포리 아침못 근처에서 태어난 작가는 전쟁의 기억을 띄엄띄엄 기억한다. 춘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숙명여대 무용과에 진학해 한국무용을 전공하다 중도에 그만뒀다. 고향에 돌아와 아버지의 서재에서 책을 읽던 작가는 한국무용을 하지 못한 것이 가슴에 응어리로 남았다.

한때 무용학원과 꽃가게를 운영하기도 했던 작가는 결혼하면서 소설을 쓰고 싶어졌다. 작가에게 글을 쓰는 일은 고향의 자연과 어린 시절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담아내는 일이었다. 글 쓰는 공부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마흔여덟살에 전상국 교수의 글쓰기 강좌를 듣고 무작정 글을 쓰기 시작해 김유정문학상에 단편소설 〈말의 수수께끼〉가 당선됐다. 이후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해 2006년에 11편의 단편소설을 묶은 《춤추는 무당벌레》를 출간했다.

작가가 이번에 집필한 소설 《수(繡)》는 작가의 어린 시절이 모티브가 됐다. 유년의 기억을 수를 놓듯 풀어낸 작가의 소설에는 유포리의 자연풍광과 늘 화자의 근처를 어른거리는 삼분이가 등장한다. 작가는 소설에 자연스러움을 담고 싶었다. 그와 더불어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녹여내는 공동체의 삶을 담고 싶었다.

소설속의 삼분이는 아리따운 처녀로 못뚝네의 딸이다. 못뚝네도 아름다운 여인으로 묘사되지만 어린 화자의 눈에 비친 삼분이는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와 같다. 어린 화자에게 삼분이는 빨리 자라 어여쁜 여인이 되고 싶은 화자의 꿈인지도 모른다.

삼분이는 소설을 읽는 내내 긴장감을 가지게 하는 작가의 계산된 설정이다. 삼분이가 물에 빠져 죽는 설정은 실제로 아침 못에서 일어난 일이 모티브가 됐다. 삼분이와 정을 통한 남자가 누구일까? 화자의 어머니와 할머니 역시 전형적인 고부갈등을 겪는다. 동생과의 다툼도 치열하다. 남아와 여아에 차이를 두었던 당시의 농촌 사회상이다. 소설에는 아침못, 무지골, 버덩솔숲 등 유포리 마을의 고유 지명이 자주 등장한다.
작가의 문체는 다정다감해서 오히려 투박하기까지 하다. 당시의 농촌 말투가 그대로 담겨있다.

“때때로 삼분이가 툇마루에 않아 수를 놓았어요. 몸을 재개 놀리며 부엌일할 때와 다른 모습이었어요. 삼분이가 앉아 있으면 무슨 까닭인지 툇마루가 달라보였어요. 그 이상한 느낌은 주위를 휘둘러보게 했어요. 수수깡이 얼기설기 드러난 흙벽, 돌쩌귀가 안 맞아 삐뚜름한 외짝 여닫이문, 한겨울 물 묻은 손으로 만지면 쩍 달라붙는 문고리, 문고리에 대롱대롱 매달린 손잡이 노끈, 달라진 건 아무 것도 없었어요. 삼분이 모습이 그림처럼 고요해서일까 그 앞을 함부로 오가게 되지 않았어요. 아래로 약간 숙인 이마와 살포시 내리뜬 눈은 주문을 외고 있는 모습 같았어요. 수실 꿴 바늘로 한 땀 한 땀 수를 놓아가는 삼분이 손은 신기했어요. 나는 삼분이 등 뒤로 다가가 고개를 빼고 들여다보곤 했어요.”

작가의 소설에 등장하는 말투는 이렇다. 어린 화자가 보는 삼분이는 화자가 동경하는 이상인 것이다.

작가는 앞으로 현대인이 느끼는 갈등과 고충을 단순화해서 내면의 충족을 느끼는 소설을 쓰고 싶다. 복잡해진 일상, 복잡해진 삶을 단순화해서 내적으로 풍요함을 나타내는 소설을 쓰고 싶다는 것이다. 작가는 현대는 물질적으로 풍족한 시대지만 사람들이 느끼는 마음의 풍요는 가난했던 예전만 못하다고 생각한다.

다음 작품에서 그려낼 마음의 풍요가 기대된다.

오동철 시민기자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