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가질 수 없는 보물처럼 온전히 부러워했던 대상이 있었다면 그건 할머니다.

생물학적인 기준을 덮고라도 할머니와 자손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시간과 공간적 경험은 나에겐 담쟁이덩굴에 감춰져 있는 비밀의 화원이었다.

‘할머니 텃밭’이란 관행농이 갖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의 전통농법과 가족농 중심의 농사기술이나 지혜를 모으고자 펼치는 인증사업이다. 가족농이란 말 그대로 가족의 노동력에 의존해서 짓는 고만고만한 농사를 말하며, 그 노동력의 절반 이상은 여성이 차지하고 있는데, 대부분은 할머니라 일컫는 어르신이다. 먹을거리를 길러내고, 아이들을 키워내고, 지속가능한 농촌을 묵묵히 지키는 존재다.

얼마 전 할머니 텃밭 인증을 위한 사전조사을 위해 춘천시 북산면에 위치한 한 농가를 방문했다. 그곳은 마치 붉은가슴울새가 안내한 비밀의 화원처럼 신비감과 생명력이 가득한 곳이었다.
제각기 자란 풀들과 가지가지 색색인 나무들과 꽃 그리고, 자연이 소리 없이 만들어낸 군락들과 산야초가 발효되고 있는 그득한 항아리! 정신없이 불러대는 거위와 종종거리며 다니는 어린 닭들까지 마치 오래된 동화책에 들어온 듯한 착각에 빠졌다.

할머니 텃밭의 인증기준에 적절한지에 대한 질문과 확인은 이러하다.

▲제초제를 사용하지는 않는지 ▲합성세제를 사용하고 있지는 않는지 ▲비닐을 태우고 있는 건 아닌지 ▲음식물쓰레기로 퇴비를 만들고 있는지 ▲씨앗은 자가 채종을 하고 이웃과 나누고 있는지 ▲빗물을 이용하고 있는지 ▲천연재료로 멀칭을 하고 있는지 ▲다양한 채소와 약초, 약곡은 심고 있는지 ▲쓰레기 분리수거와 자원재활용은 잘하고 있는지 ▲제철음식과 발효음식을 만들고 나누고 있는지.

내 집 앞의 흙과 물과 공기, 그리고 이름 없는 미생물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맞이한 할머니는 사계절의 시간 속에서 정성을 들여 가꾸어 온 자신의 마음과도 같은 텃밭을 통해 자연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농사에서 벗어나 친환경 유기농업을 실천하고,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유통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저장 발효음식에 대한 지혜를 모아 나누고자 한다.

글로벌 푸드 시스템이 등장하고 ‘종자에서 식탁까지’ 자본이 먹을거리의 생산·유통과정을 장악하면서 농사를 짓는 이들은 ‘을 중의 을’로 전락했다. 여기에 시장개방까지 겹치면서 1980년 1천83만명이던 전국의 농가인구는 30년 만에 290만명으로 격감했다. 곡물자급률 또한 OECD 32개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 수준으로 떨어졌다(23.6%, 2014년 기준). 그사이 정부는 ‘억대 농부’로 상징되는 기업농·전업농을 육성해 글로벌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며 끊임없이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

농촌의 농촌다움은 사람의 노동과 자연이 직접 대면하는 데 있다. 그 접점에 할머니가 서서 오늘도 텃밭을 가꾸며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몸놀림을 아끼지 않는다.

채성희(음식문화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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