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은 그 자체로 장엄한 우주이자 삶의 덩어리’

전태원 작가는 춘천고, 중앙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300여회의 개인전, 부스전, 단체전을 열어 강원미술대전대상(1987), 강원도문화상(2000) 등을 수상했다. 현재 (사)아트인강원이사장과 강원도미술협회자문위원 및 춘천예총 명예회장 등을 맡고 있다.

“내 앞에 특이한 데라곤 눈꼽만치도 없고 가공되지도 않은 하나의 돌이 그냥 놓여있다. 저 돌은 태초에 조물주가 빚어서 에베레스트 암반에 붙여 놓은 것인데, 어느 날 벼락에 떨어져 나와 세계의 지붕 파미르 고원을 굴러내려오면서 이리저리 부딪치며 비바람에 씻기고 마른하늘 진자리를 다 보다가 티베트 라마승이 숨이 가빠서 잠시 앉았던 바위인 것도 같고, 아니면 백두산에서 굴러 내려오다가 단군 할아버지의 눈에 띄어 신들메를 고쳐 신던 바위인 것도 같다…돌은 나에게 단순한 재료나 조형적 형상이 아닌 장엄한 우주이자 그 역사만큼 무겁고 무한한 긴 삶의 덩어리다. 나는 돌이 간직한 억겁의 역사 중 일부만을 보는 객이 될까봐 두렵다. 내 작품을 통해 잠시나마 이 시대 사람들이 영겁의 편린(片鱗)을 보고 느껴준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 작가의 노트에서

지구상에는 수많은 사물이 존재한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을 비롯해 수만에서 수십만 종에 이르는 동물, 식물, 곤충 등의 생물과 흙, 암석 등의 수많은 무생물이 존재한다. 이중 수천만년을 지나면서도 변하지 않는 것은 암석이 아닐까?

The Stone-영겁의 단편 180x90x15cm 2002

전태원 작가의 말처럼 돌은 억겁의 세월을 지나면서도 그 형상의 변화가 적다. 작가는 이런 돌이 가진 영겁의 역사에 천착해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미술에 재능을 보인 작가는 회화뿐 아니라 공작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이런 작가의 재능은 어머니를 비롯해 외가 쪽의 영향 때문이다. 초·중학교를 고향인 평창에서 졸업한 후 미술을 전공하기 위해 춘천고등학교로 유학을 했다. 이미 어릴 때부터 미술에 재능이 있었고 본격적인 미술공부를 하기로 진로가 정해졌기에 특별한 고민 없이 미술에 전념할 수 있었다. 춘천고등학교 미술반 활동을 하며 미술부장도 맡았고, 1975년 중앙대 예술대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 미술교사로 교편을 잡아 20년만에 퇴직하고 전업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퇴직 후 수많은 전시에서 담백한 수채화를 선보이기도 했지만, 유화를 많이 그렸다. 그런 작가가 2000년 이후에는 돌에 관심을 갖고 작품에 담기 시작했다. 작가가 돌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작가가 밝힌 대로 수천만년을 변함없이 지켜온 돌이 가진 역사성이다. 16여년 동안 돌에 천착하며 3회의 개인전 중 두 번은 ‘스톤시리즈’로 전시했고, 한 번은 유화를 전시했다. 이와 함께 춘천, 원주, 서울, 순천 등지에서 수많은 부스전을 개최했다. 전시작품 대부분은 ‘스톤시리즈’인데, 공통적으로 대작이라는 특징이 있다.

작가는 “수채화는 대작이 아니라도 가능하기에 가끔 전시에 참여한다”며, “‘스톤시리즈’는 대작이 아니면 담아내기 어려운 작업이라 전시회를 자주 하기 어렵다”고 한다. 근래에 들어서는 돌뿐 아니라 물결, 바람결 등이 만들어내는 ‘결’에 주목하고 있다. ‘결’ 역시 돌과 마찬가지로 수천만년 지속되는 역사적 반복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의암호의 물결에서 창안된 반복적인 ‘결’의 흐름과 강변을 타고 일렁이는 바람의 ‘결’을 작품에 담았다.

작가의 작품 주제를 살리는 재료는 종이다. 일상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신문지, 포장지, 잡지 등 모든 종류의 종이가 작가의 작품을 그려내는 잉크의 역할을 한다. 작가는 종이를 잘게 잘라 물에 불려 그것을 통해 돌의 질감을 표현해 낸다. 종이로 만든 작품이지만 직접 만져보기 전에는 돌로 보인다. 종이가 흔하게 구할 수 있는 소재이기도 하지만, 돌의 질감을 살리기 위해 실제로 돌가루를 사용하면 무게가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또한 그동안 작업하던 돌 모양에서 돌의 질감을 평면의 캔버스에 담기 위해 착안한 소재이기도 하다.

작가는 미술계의 마당발이다. 지금도 강원예총 명예회장이면서 강원도미술협회 자문위원, 강원국제미술전람회 민속예술축전 이사이기도 하다. 그런 작가에게 작금의 춘천 미술계는 아쉬움이 많다. 가장 큰 아쉬움은 공립 미술관이 없다는 것이다. 공립 미술관이 있다면 전시회를 끊임없이 개최해 작가들에게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 미술관에 소장되는 작품들은 미술의 역사가 될 것이고, 시민들에게는 예술적 안목을 키워줄 수 있다. 미술가들의 공통된 바람이다. 아쉬운 점은 또 있다. 춘천의 예술계는 아직도 ‘끼리끼리’ 문화를 벋어나지 못해 저변이 확대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작가는 이런 문제를 극복해야 춘천의 예술계가 안정적으로 좋은 작품을 생산해 낼 것이라고 말한다.

작가는 현재 35명의 정예회원을 보유한 ‘아트인강원’의 이사장이다. ‘아트인강원’은 2012년부터 매년 ‘아트인강원전’을 열고 있다. 사단법인 설립을 계기로 앞으로는 공익적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다. 아직은 세부적인 계획을 밝힐 단계는 아니지만 내년부터 공익 프로그램을 선보일 예정이다.

오동철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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