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를 데려와 주셔서 감사해요.”

2박3일 간의 여름방학 독서기행에 도무지 참가할 의지를 보이지 않던 Y가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보내온 카톡이다. 밤늦도록 아버지를 따라 민물고기를 잡아 가사에 보태느라 학교에 와선 늘 엎드려 졸거나 혼자였던 Y.
낙안읍성 성곽길을 걸으며

작년에 이어 진행된 올해의 ‘길 위의 인문학, 소통 나눔 기행’은 40여명 중학생이 참여해 서산 개심사-해미읍성-서천 국립생태원-순천 ‘기적의 도서관’-벌교 태백산맥문학관 및 남도소리 공연-순천만 국가정원-습지생태공원-낙안읍성-선암사 등을 답사하는 긴 여정이었다.


7월 말 불볕더위로 온 국토가 후끈 달아올랐다. 인제를 벗어나자마자 버스 안에서 각자가 뽑아든 쪽지에는 2박3일 동안 은밀하게 실천해야 할 ‘수호천사 미션’이 있었다. 서로 짝을 이뤄 여정 내내 은밀한 응시의 눈길로 서로를 챙겨줄 수 있는 즐거운 놀이였다.

첫째 날, 천년 고찰인 개심사를 중심으로 백제문화를 느끼고, 조선시대 3대읍성이며 천주교 박해의 역사 현장인 해미읍성을 돌아봤다. 오후에 도착한 서천의 국립생태원에서는 열대관, 사막관, 지중해관, 온대관, 극지관 등을 탐방하며 다양한 기후와 생태계를 체험했다. 게다가 최재천 생태원장의 ‘개미과학기지로 떠나는 개미세계탐험전’은 특별 체험 서비스였다.

그리고 이어진 모둠별 책놀이. 생태원의 쾌적한 통나무집 숙소에서 하루의 답사 소감만이 아니라 학교생활, 가정생활에서 응어리졌던 속마음까지 털어놓으며 고단함도 잊은 채 밤늦도록 이야기꽃을 피웠다.

둘째 날, 순천 ‘기적의 도서관’을 탐방한 아이들은 아름다운 도서관 곳곳을 돌아보며 연신 놀람과 충격의 표정이었다. 아름답고 쾌적한 공간의 위대한 힘이 아이들을 자연스럽게 책으로 이끌었다.

“선생님, 여기 더 머물면 안 돼요?”

대부분 교실 한 편에서, 운동장 구석에서 눈에 띄지도 않게 그늘 속에 지냈던 아이들이 눈빛을 반짝이며 여기저기 책을 펼쳐 빠져드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했다.

오후에 도착한 태백산맥 문학관. 아이들은 자기보다 높은 조정래 작가의 육필원고를 보고 다시 놀랐다. 문학관 입구에 새겨진 작가의 말, “문학은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인간에게 기여해야 한다”를 다함께 낭독하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순천만 습지생태공원에서 어부소년 Y가 갈대밭 습지에서 낚아 올린 바다게들의 합창과 아름다운 방생, 푸른 갈대밭의 해지는 풍광과 자발적으로 이어진 아이들의 시낭송도 잊지 못할 것이다.

마지막 날, 아침 일찍 서둘러 낙안읍성 성곽길과 선암사 천년 숲길을 걸었다. 버스에서 내리면 찌는 듯한 무더위에 땀이 줄줄 흘렀지만, 아이들은 한 마디 불평도 없이 하루 1만보 이상의 길을 친구와 선생님과 함께 걸었다.

춘천으로 귀가하는 버스에서 2박3일 동안의 긴 여정에서 보고, 듣고, 느꼈던 ‘시간의 점’을 함께 떠올리며 소중한 추억의 선을 이었다. 더불어 은밀하게 실천한 수호천사 역할을 발표하며 즐겁게 소감을 나눴다.

교실에서, 도서관에서의 책읽기가 세상의 현장으로 이어져 온몸으로 읽는 독서체험이 절실하다. 게다가 혼자가 아니라 친구와 선생님, 더러는 부모님과 함께 걷는 길은 무언의 교감과 신뢰의 눈빛을 나누는 길이다.

한명숙(인제중 수석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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