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많은 것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살고 있다. 지금 걸어가고 있는 길이 당장 쫙 갈라져서 내가 땅속으로 빠지지는 않으리라는 믿음을 갖고 다닌다. 밟고 서있는 지반이 튼튼하다는 나의 학습경험에 대한 믿음과 타인의 동일한 믿음에 대한 공감이 있기 때문이다. 다음 날 아침이면 잠에서 깨어나 새로운 날을 살 것이라는 경험적 사실에 비추어 우리는 매일 밤 편안히 잠자리에 든다. 종교인들은 깊은 신앙심을 갖고 타인과 사회에 선행을 베풀면 천국에 가리라는 확신을 갖고 신앙생활을 한다.

그러나 일반적인 믿음이 거짓으로 판명되는 경우는 항상 있어왔다. 이제까지 나 개인에게 일어나지 않았을 뿐이다. 서울시내 보도가 내려앉아서 행인들이 지하 동공으로 빠지는 일이 얼마 전 미국 CNN 방송에 보도되기도 했다. 잠에서 깨어나기 전 새벽녘에 사람들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는 것을 우리는 사실로 알고 있다. 종교적 삶을 실천한 사람들이 천국에 갔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바가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다. 사실 (facts)에 근거한 우리 인간의 믿음(belief)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나와 남의 믿음들 속에는 언제나 부정확성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각자 스스로가 통제할 수 없는 수많은 것들에 대해 믿음을 갖고 ‘나에겐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겠지’ 하며 일상을 살아간다. 믿음이 없으면 우리는 불안해서 살아가기 힘들다.

우리의 뇌는 나와 주변에 대한 모든 것들에 대한 사실을 파악하고자 한다. 눈, 귀, 코, 입, 피부 등 몸 밖과 몸속의 다양한 감각기관들을 총 동원해 밤이나 낮이나 개체의 몸 내외를 스캔하고 있다. 엄청나게 많은 정보들이 신경섬유를 타고 중추신경계로 척수와 연수를 거치고 중간 뇌인 시상을 거쳐 감각대뇌피질로 입력이 된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불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정보들은 중추신경계로 상행하는 과정에서 대부분 억제가 되고 필요한 극소량의 정보만 선별적으로 대뇌피질에 도달하게 된다. 능동적 선별판단과정은 외부세계를 뇌 속에 내재화하고 가상 현실화하는 믿음을 가능하게 한다. 사실과 믿음은 별개의 독립되고 상충되는 것이 아니라 뇌를 기반으로 한 하나의 정보처리 및 인식과정이다. 대뇌피질의 여러 영역과 오래된 하부의 정서적인 뇌 영역은 경험과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선별기준을 마련해 능동적으로 세상을 보는 창을 만든다.

이러한 능동적 감각인지의 과정을 거치며 개인은 자기 자신의 삶의 경험에 대한 믿음을 축적하고 타인들의 경험에 대한 공감(empathy)을 확장한다. 현대인들은 중세나 고대의 사람들에 비해서 매우 사실에 근거한 합리적, 과학적 사고를 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고대 사람들의 뇌가 현재 우리의 뇌와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현생인류는 모두 다 한 종류,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이기 때문이다. 현대의 과학인들은 사실에 근거해서 판단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며, 종교인들은 믿음에 근거해서 판단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라고 이분법적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과학인이면서 종교인인 사람들도 우리 주위에 많이 있다. 그들은 모두 같은 사실에 근거하면서도 사실을 선별적으로 인지하는 같은 뇌를 갖고 있다. 차이점은 대뇌피질과 정서적 뇌를 통해 세상을 보는 믿음의 창을 달리한다는 것이다. 부처님 뇌로는 부처님 뇌만 보인다. 강물은 강물이다. 강은 강이요. 물은 물이다.

신형철 (한림대 뇌신경생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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