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년보다 훨씬 무더운 여름이다. 우리에게 여름은 더운 계절이고, 그래야 또 여름답기도 하다. 그래도 올해는 유난히 더 덥다.

올해가 유난히 더 더운 것은 사실 두 가지 측면에서 이미 예정돼 있었다. 그 하나는 절기 속에 표현돼 있는 월복(越伏)이고, 다른 하나는 기후변화에 의한 대기온도의 상승에 따른 것이다. 여름철 가장 더운 시기는 초복, 중복, 말복 사이로 대체로 20일 간이다. 우리의 여름은 이 20일의 복중기간이 여름 중에서도 여름인 것이다. 그런데 올해는 월복이 들어서 이 복중기간이 30일이다. 이미 더운 날이 30일이라고 예고해 놓았는데 현대를 사는 우리만 잘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또 다른 한 요인인 고온현상은 대기 중에 누적된 온실가스의 영향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생활 속의 혹은 산업활동에서 발생하는 이탄화탄소를 줄여야 한다고 끊임없이 말해 왔다. 그러나 누구도 이 기후변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 줄이기를 시행하지는 않았다. 당장 유류 값이 싸다고 디젤차를 선호하면서 이산화탄소와 매연을 뿜고 다닌 것이 누구인가? 산업활동을 하면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기로 국제적으로 약속해 놓았지만 그 저감노력을 얼마나, 어떻게 해 오고 있는가 말이다. 그러고 보면 올해의 더위는 한편으로는 이미 지구가 속해 있는 태양계시스템에 예정돼 있는 것이라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순전히 너나할 것 없이 우리의 탐욕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렇다면 우리는 더위를 탓할 자격이 없다. 그렇다고 맥 놓고 있을 수만도 없다.

우리는 더운 여름에는 자연스럽게 그늘을 찾았다. 그 그늘은 따가운 햇살을 직접 가려주기 때문에 아주 유용하고, 상대적으로 기온이 낮아 시원함을 느끼게 해줬다. 그래서 그 그늘이 건물이 만들어 내는 그늘이든, 나무로 인한 그늘이든 고마웠다. 그런데 이제는 건물이 만드는 그늘은 시원하기보다는 덥다. 건물이 많아지고 건물이 붙잡고 있는 이미 데워진 잠열로 인해 햇빛이 가려지기는 하지만 난로 옆에 서있는 기분이다. 이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나무그늘을 더 찾게 된다.

나무그늘은 왜 시원하게 느껴질까? 나무가 차단하는 햇빛과 더불어 나무는 숨 쉬는 생물이기 때문이다. 나무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광합성작용을 한다. 광합성작용은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원료로 하기 때문에 고맙게도 사람들이 배출한 이산화탄소를 감소시키게 된다. 이 과정에서 산소가 부산물로 만들어지고, 이것을 나무의 몸 밖으로 내 보내는데 이때 수증기 형태의 물과 함께 배출된다. 햇빛은 가려지고 부산물인 산소가 물과 더불어 배출되면서 나무그늘은 항시 상쾌하고 시원하다. 그 나무그늘이 좀 더 시원해지기 위해서는 나무가 딛고 서 있는 지표면도 단단한 포장재료(hard materials)로 포장되기보다는 부드러운 재질(soft materials)로 포장돼야 하고, 그 면적도 넓을수록 좋다.

더운 여름철을 대처하기 위해 선풍기나 에어컨이 필요하겠지만, 그에 앞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하나는 건물을 지으면서 건물 표면에 식물을 올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담쟁이 넝쿨이 건물 표면을 타고 올라가도록 하든지, 건물 표면 외부에 넝쿨식물이 타고 올라가도록 시설해 수직적으로도 녹화면적을 넓히는 것이다. 건물 외관의 녹색 식물은 건물의 품격까지 높여주는 역할을 하니 건물주의 입장에서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는 것이 된다. 다른 하나는 생활공간의 모든 자투리 공간일지라도 나무를 심고 단단한 포장 재료를 사용한 포장 면적을 줄이는 것이다. 자투리 공간을 쌈지공원으로 가꾸자. 쌈지공원은 외국의 포켓공원(pocket park, vest park)을 대신해서 이어령 교수가 장관으로 재직할 때 만들어 낸 용어다. 내 몸 가까이에 있는 수많은 쌈지공원이 여름을 쉽게 이겨낼 수 있는 바탕이다. 쌈지공원이 많게 되면 그 도시는 당연히 명품도시가 된다.

박봉우 (강원대 명예교수·숲과문화연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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