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황대제 수명장장 수장명 방원이요 지황대제 정복수 축원이니 발원축원 소망대로 조양동 중에 물이 많고 집집마다 불을 밝혀 수화청명 점지될 제 파명당이 회복되고 명당 뜰에 옥이 돋고 옥당 뜰에 명이 돋아 달 뜬 광명 해 뜬 세계로 기왕기도 하소서 상향”

이 내용은 ‘밭치리(전치곡리)’ 거리제와 서낭제 기도문(축문)의 끝부분이다. 하늘과 땅의 신을 불러 축제를 열면서 마을을 이상세계로 만들어 달라고 기원하고 있다. 얼마나 멋진 세상을 이루려고 했는지 알 수 있다. 밭치리 사람들은 500년 이상 마을제사를 지내오면서 민속놀이(1994년 강원도), 장승춤 등 수많은 콘텐츠를 낳기도 했다. 고된 농사일 중에도 짬을 내어 춤 연습을 하고, 민속경연대회를 준비했다. 이처럼 밭치리는 춘천 최고의 민속마을로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해 왔다. 동산면 조양2리 4반 밭치리(전치곡리)의 이야기다.

밭치리는 옛날 춘원국도가 생기기 전에는 홍천에서 춘천으로 가던 유일한 교통로였다. 이곳에는 신화를 간직한 서낭당이 있고 거리제가 행해지고 있었다. 서낭당에는 대룡산을 통한 천신(天神)이 하강해 있으면서 마을을 보호해 주었고, 마을입구에는 장승, 솟대, 돌탑이 놓여 있었다. 장승은 소나무 숲과 어울려 묘한 분위기를 창출하며 장승 숲을 이루고 있었고, 꿩과 따오기를 상징하는 솟대는 돌탑과 어울려 밭치리가 신성구역임을 나타내 주고 있었다.
장승에 이정표가 쓰여 있다. “한양 300리 춘천 80리 홍천 40리 동산 15리”

오가는 길손들이 이곳을 지나면서 이정(里程)을 알 수 있었고, 나그네는 무사여행을 빌며 참 많이도 비손 짓을 했다.

매년 3월 3일이면 아침 7시에 서낭제가 열리고, 오후 2시에는 거리제가 열렸다. 제사 후에는 마을의 길을 빗자루로 쓸면서 길놀이를 하기도 했다. 참가 인원이 몇 백 명에 이를 만큼 그야말로 성황(盛況)을 이루었다. 마을에서는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서 천막을 치고 돼지를 잡아 국밥을 끓였다. 이 행사는 전국적으로 알려져 유명세를 탔다. 고대 마을축제의 원형을 아주 잘 간직한 마을제의다. 당신화(堂神話)를 통해 볼 때는 강릉단오제보다도 더 나은 신화담(神話談)과 신화소(神話素)를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마을은 이제 마을신이 되었던 천신이 하늘로 옮겨 갔다. 지상낙원을 만들고자 천신이 이루어 놓은 하늘마을(天洞)을 인간의 무지한 욕심 때문에 다시 거두어 간 것이다. 이 마을은 종합휴양시설 일명 ‘무릉도원’개발로 골프장으로 변하고 말았다.

전치곡리의 지명담이면서 당신화인 밭치리 이야기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아득한 옛날 이 마을에는 용씨(龍氏)네가 많이 살았는데, 그 중에 마음씨 착하고 용모 단정한 청춘과부 김 씨(金氏)가 홀몸으로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 김 씨 부인은 가난은 참을 수 있으나 너무 쓸쓸하고 외로웠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비가 오면서 뇌성벽력을 치더니 난데없는 장수가 투구와 철갑옷을 두르고 김 씨 부인 앞에 나타났다. 그는 “옥황상제의 명령을 받아 부인을 찾아왔으니 기꺼이 여기소서”라며 품에 안기려 했다. 깜짝 놀란 부인이 방을 뛰쳐나와 보니 전에 없던 우물이 있고, 그 옆에는 푸른빛을 발하는 아름다운 구슬이 있었다. 그 구슬을 입에 무니 향기가 나면서 스르르 녹아 없어졌다. 그 후 열 달이 지나 김 씨 부인은 옥동자를 분만했다. 갓난아기는 기골이 장대하고, 눈썹은 용의 수염같이 길고, 눈은 샛별같이 빛나는 사내아이였다. 그런데 아이는 사흘 동안 계속 울다가 나흘째 되던 날 ‘엄마!’하고 부르는 것이었다. 김 씨 부인은 너무 두려워 아기를 죽이고 자기도 목숨을 끊기로 작정했다. 그런데 7일째 되던 날 아이가 온데간데없어 찾아보니 보리밭 한 가운데 서 있는 커다란 밤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것이었다.

김 씨가 내려오라고 하니 그 아기는 아버지를 찾아 하늘나라로 간다며 하직인사를 했다. 아기는 어머니가 병을 얻으면 그 밤나무 아래 졸고 있는 꿩 한 쌍을 잡아 고아먹으라고 당부하고, 훗날 무덤이라도 찾으려면 지명을 알아야 한다며 “밭전(田)! 꿩치(雉)! 골곡(谷)! 전치곡!”하며 두세 번 외치더니 홀연히 사라졌다고 한다. 그로부터 이 마을은 전치곡리 또는 밭치리라고 전해져 왔다.(출처=《춘추지》)

이학주 (문학박사)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