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자수 작가 김예진

나 그대만을 위해서 피어난/ 저 바위틈에 한 송이 들꽃이요/ 돌 틈 사이 이름도 없는/ 들꽃처럼 핀다 해도/ 내 진정 그대를 위해서 살아가리라~.
(작사가 하지영이 지은 조용필 노래 들꽃 중)

김예진 작가의 천연 염색 작업

산길을 가다가 만나는 개망초를 보고도 ‘와!’하고 감탄사를 내 뱉는 사람들이 많다. 그만큼 사람들의 마음속에 감성이 충만하다는 것일 게다. 다만 그 감성을 표출하고 사는 시간이 별로 없을 뿐.

물오른 생강나무
노란 꽃망울
톡톡 터지며 번지는 춘정
금병산 자락을 다 둘러도
지난봄도
금년 봄도
내 것 같지는 않아라.
그리던 시간이 쌓이듯
숲길 가득
꽃잎 지우니
그렁그렁한 달뜨면
소녀적 첫사랑이나 가물거릴려나.
동백꽃 향기
마을 아래까지 내려와
수십 번의 봄이 가도

봄은
내 것은 아니로구나.


어린 시절 한 줄기 소나기가 지나가면 어머니는 밖에 나간 아버지 돌아올 시간에 맞춰 밥상을 차린다. 반찬이라야 열무김치, 노각무침, 어쩌다 돌나물 물김치가 구색을 맞추는 단출한 밥상이지만 그 밥상을 풍성하게 하는 건 다름 아닌 상보(床褓)다. 빛바랜 광목천에 새겨진 빨간 맨드라미는 어머니가 한 땀 한 땀 새겨놓은 한(恨)이다. 아마도 어머니의 고단한 삶의 유일한 위안은 상보에 놓아진 수(繡)였을지도 모른다.

김예진 작가는 1960년대 후반, 당시엔 시골마을과 같았던 서울의 마천동에서 태어났다. 옛날 어머니들과 양반집 규수들은 장지문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을 음미하며 자수를 놓았다. 김 작가는 그런 자수의 맥을 들꽃이라는 풋풋한 소재로 새롭게 일궈낸 자수공예가이자 규방공예, 염색공예 전문가다. 특히 들꽃자수 분야에서 돋보이는 작가는 기실 춘천에서는 보기드믄 스테디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2014년 여름 출간된 《춘천 사계절 꽃 자수》라는 책은 지금도 큰 금액은 아니지만 꾸준히 인세가 들어온다. 1만권을 목표로 출간된 이 책은 대략 6천권 정도가 팔려나갔고 지금도 꾸준히 판매되고 있다. 작가의 작품에는 한국적 냄새가 진하게 배어있다. 그러나 작가의 작품기법은 한국자수가 아니라 서양자수에 기반을 두고 있단다. 사실 서양자수와 한국자수의 기법에는 한두 가지만 제외하면 큰 차이가 없다고 한다. 작가는 결국 밑그림인 도안의 차이라고 말한다. 자수라는 분야 자체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같은 패턴을 가지고 있다는 말로 들린다. 자수는 기본적으로 그림의 캔버스처럼 바탕이 있어야 한다. 한국자수나 서양자수나 값비싼 실크를 주로 이용하는데, 김 작가는 면사를 이용한다. 면사가 실용적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서양자수를 하게 된 까닭은 처음 배울 때 국내에서 출간된 서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서점을 뒤졌지만 마땅한 서적을 찾을 수 없어 일본서적을 통해 바느질을 배웠다. 그런 세월이 벌써 16년이다. 작가가 자수책을 출간하게 된 배경이다.

들꽃을 수놓으려면 기본적으로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 바느질을 아무리 잘해도 밑그림이 시원치 않으면 완성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 작가가 들꽃자수에 탁월할 수 있었던 것은 어린 시절부터 지니고 있었던 남다른 미술적 재능 때문이었다. 작가는 미술을 전공하고 싶어 미대를 가고자 했으나 형편상 갈 수 없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시간을 쪼개 조각보 등 규방공예를 배우기 시작했고, 그 작업을 통해 천연염색에도 심취했다. 그런 과정을 거쳐 들꽃자수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 작품의 소재를 얻기 위해서는 많이 봐야 한다. 그런 이유로 작가는 북산면 부귀리 산골까지 발을 디뎠다. 지금도 틈만 나면 부귀리를 찾는다. 틈틈이 들로 산으로 나가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들꽃을 작품에 담는다. 이제는 들꽃에 관한 한 거의 생태전문가 수준이다. 작가는 자수를 놓으며 틈이 날 때마다 시집을 읽는다. 들꽃 한 송이 들풀 한 포기가 수틀에 옮겨질 때면 작가는 그 꽃과 풀에 이야기를 담는다. 바느질 속에 생명이 담겨지는 과정이다.

작가는 현재 ‘우리들꽃자수연구회’를 운영하고 있다. 더불어 서울시립 인생이모작센터, 송곡대, KT&G 상상마당, 춘천문화원 등에서 강의도 하고 있다. 자수에 관한 책도 꾸준히 출간할 예정이다. 1년에 한 권씩 출간하려던 책이 조금 늦어져서 내년 초에야 두 번째 자수 책이 세상에 나올 예정이지만 큰 흐름에는 변화가 없다, 세 번째 책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는 데 더는 비밀이란다.

김예진 작가는 2013년 ‘대한민국 전통공예협회 창립전’(인사동 한국미술관), 같은 해 ‘설지연 전’(양평 세미원), 2014년 춘천문화원 전시실 ‘들꽃자수 개인전’, 2015년 ‘거제 해금강 테마박물관 초대 개인전’ 등 여러 개인전과 초대전을 열거나 참여했다.

오동철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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