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보는 <곡강(曲江)>이란 시에서 “사람이 칠십까지 살기가 예로부터 드물었다(人生七十古來稀)”고 했다. 그러나 오늘날 환갑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해 인생차례로 여기지도 않고 있으며, 팔순을 살아도 오래 살았다고 보지 않는 실정이다. 비약적으로 발달한 과학문명과 의료기술로 인한 인간수명의 연장은 더욱더 백세시대를 가능케 하고 있다.

베이비붐 마지막 세대인 50대 초중반 사람들은 사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어른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공자는 나이 오십을 천명을 아는 나이라고 했으니, 이른바 ‘지천명(知天命)’이다. 명(命)이란 한자는 큰 집 주인이 사람을 꿇어앉혀 놓고 무엇인가를 입으로 전달하고 있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여기에 하늘을 뜻하는 천(天)자가 붙어 있으니, 하늘의 명이 천명이다.

그런데 살아 있는 생물체도 아닌 하늘이 명을 내릴 수 있는가? 하늘은 우주를 존재케 하는 원리를 내재하고 있다고 공자는 믿었다. 공자가 말하는 천명이란, 범박하게 말하면 우주의 운행원리를 뜻한다. 우주의 운행은 어떠한 작은 오차도 없이 진행되며, 정직하고 순진무구한 속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우주의 운행법칙이 내 몸속에 그대로 존재하고, 그 법칙을 깨닫는 것이 다름 아닌 지천명이라고 한다면 무리한 논리일까?

맹자는 이 우주의 운행법칙이 사람 몸속에 담겨지는데, 그것이 선(善)한 마음이라고 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내가 선한 사람임을 아는 순간, 세상은 다르게 보인다. 그러한 깨달음에 도달해야 하는 나이가 오십이라고 공자는 말하고 있다. 내가 선한 사람임을 깨닫는 순간, 나 이외의 사람 또한 선한 사람임을 깨닫게 되고, 그러면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한 존재로 인식될 것이다. 내가 소중하면 남도 소중하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에서 존경하는 마음이 생겨나고, 사람을 존경하면 하늘을 경외하게 된다. 하늘은 말이 없으며, 냄새도 없고 색깔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모습 안에는 하늘이 담겨져 있다. 내 마음에 하늘이 담겨져 있음을 깨닫는 순간, 사람에 대해 참된 사랑을 할 수 있고, 인간이 이를 수 있는 지고지순(至高至順)에 도달할 수 있다.

나이 오십에 이르고도 자기가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것은 불행한 삶을 살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백세시대를 살아야 하는 작금에 이르러서, 혼자만이 잘 먹고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빠져서 물질과 자본만능으로 흘러가는 인간군상을 흔히 볼 수 있다. 내가 선한 사람임을 깨닫고, 이 세상은 함께 해야 아름답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는 삶이 지천명의 삶이고 인간다운 삶일 것이다.

나와 너를 넘어 우리라는 의식으로까지 진전돼 나아가는 삶은 지천명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단계다. 이렇게 해야 공자가 말한 대로 육십이 되어서는 인생의 주어진 순리대로 귀를 열어둘 수 있다. 이렇게 해야 마음이 가는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 성인(聖人)의 경지에까지 도달할 수 있다. 결국 참다운 지천명은 선한 마음을 발견하는 것으로 귀착된다.
 

허준구 (춘천문화원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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