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다. 해마다 명절이 돌아오지만 명절을 맞이하는 세태가 언제부터인가 많이 변했다. 가족과 이웃, 친구를 만나 해후를 나누고 회포를 푸는 명절은 색 바랜 흑백사진처럼 기억에 가물거린다. 휘황찬란한 불빛과 넘쳐나는 물질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얄팍한 지갑에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명절을 보내기 일쑤다.

하물며 이런저런 이유로 영어(囹圄)의 몸이 돼 가족과 이별해 쓸쓸히 명절을 보내는 사람들과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 풍찬노숙 하는 많은 사람들, 느닷없는 지진에 망연자실한 사람들, 특히 자식을 가슴에 묻고 아직도 거리를 헤매는 세월호의 유족들에게 명절은 평시보다 더한 고통의 시간이리라.
따지고 보면 세상은 과거나 현재나 크게 다르지 않다. 늘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있고 희희낙락하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과거엔 어땠을까 궁금해 신문자료를 뒤졌다. 일제강점기인 1924년의 추석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중천(中天)에 뜬 명월(明月)’이라는 제목의 동아일보 기사를 현대적 언어로 바꿔 소개한다.

어제(昨日)는 팔월 추석이다. 산 사람은 혹 떡을 만들고 술을 만들고 과실을 사서 죽은 사람의 영(靈)에 제사 지내고 산소 가까운 사람은 산소에 가서 울기도 한다.

옛글에 ‘매양 명절을 당하면 곱이나 어버이를 생각한다(每逢佳節倍思親)’는 말이 있다. 어찌 어버이뿐이랴. 이런 명절을 당하면 어버이와 자녀 사이나 형과 아우 사이나, 남편과 아내 사이나, 모든 사이에 이별이나 또는 죽음을 더욱 슬퍼한다.

이별한 사람에게는 그 신상을 생각해 눈물을 흘리고, 죽은 사람에게는 그 영혼을 생각해 눈물을 흘린다. 중천에 떠있는 팔월보름달은 해마다 변치 않고 홀연히 떠서 혹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근심 띈 창에도 비추고, 남편을 이별하고 한숨 쉬는 아내의 우는 얼굴에도 비추리라. 달은 무정하게 비추겠지만 사람은 그를 보고 감회가 깊다.

더욱 여러 가지 사정으로 우리 조선 사람의 살림살이는 단란한 즐거움보다 부모처자와 형제친구가 이산하는 사람이 더욱 많다. 최근 4-5년 동안에 죄 없이 비명횡사한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철창에서 신음하는 조선의 자녀와 귀중한 생명을 이역만리에 버린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맛난 음식을 먹고 밝은 달을 쳐다보는 아들을 잃은 어머니가 얼마나 되는가? 남편을 잃은 아내가 얼마나 되는가? 매양 명절을 당하면 이별한 사람과 죽은 사람을 생각해 감회가 더욱 깊고 눈물이 아른거린다. 아! 목 메이는 음식! 눈물로 보는 달! 연년이 변치 않는 자연! 변하기 잘하는 인사(人事)!(동아일보 1924년 9월 14일자 기사)

92년 전의 기사를 보면 그 감회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사람 사는 세상이 천지개벽한 것 같은 이 시대에도 어찌 이토록 소란스러운가? 추석유감이다.

전흥우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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