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 아티스트 이형재 작가

“이 땅 자체가 살아있는 생명체입니다. 산이며 바위며. 바위에 기원의 의미로 새긴 미륵, 신장, 보살 마애불 등이 오랜 풍화의 시간을 지나면 바위의 본 모습과 기원의 염원이 둘이 아니게 됩니다. 그냥 바위 아래에서 기도 올리는 것을 보기도 합니다. 수많은 염원을 바위에 새겨서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바위에 새겨진 문양과 조각은 오랜 세월 풍화를 거쳐 바위가 가진 본래의 모습과 마모된 형상이 공존하는, 엄밀하게 말하면 바위의 본 모습으로 돌아가는 경계에 오게 됩니다. 작가는 이 경계의 형상을 염두에 두었습니다. 풍화로 마모돼 가는 문양과 형상을 재현한다는 것보다는 바위가 가진 속성으로 돌아가는 과정입니다. 문양과 조각이 가졌던 형상이 세월의 흔적과 시간의 흐름 속에서, 새겨진 조형이 가진 의미가 오히려 드러나게 되는 경계에서 질감을 갖는 바위의 형질과 세월 속에 지니고 있던 염원의 흔적이 하나가 됩니다.” (2016년 10월 전시될 돌 위에 새겨진 염원 - 작가의 작업노트 중)

조소를 전공했지만 화가와 조각가, 다인(茶人)으로 불리기를 좋아하는 이형재 작가. 서예를 바탕으로 퍼포먼스를 하는가 하면 동시집 《무지개》와 시집 《그대로》를 출간하는 등 다재다능한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그런 작가의 치열함이 때로는 비아냥을 듣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한 가지만 하지 왜 이것저것 하느냐는. 그러나 작가의 시도는 끝이 없다. 작가의 조각은 30여년의 공력이 묻어있고, 다인의 생활 역시 30여년을 훌쩍 넘긴 오랜 수도의 과정이다. 다방면의 작업을 시도하지만 그 어느 작업도 단기간에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전공인 조소뿐 아니라 회화, 조각, 서예, 다도 등 30년 안쪽의 작업은 없다.

작가는 초등학교 때 이미 만화가로 데뷔했을 정도로 타고난 자질을 보였다. 만화가협회 정식 회원이라는 말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여기에 등산과 암벽등반이라는 또 다른 작업이 추가됐다. 이미 30여년째 계속한 작업이니 그저 취미라고 하기엔 적절하지 않다. 춘천 근교에서 작가가 처음 등정해 이름 붙인 암벽도 벌써 여러 곳이나 된다.

1979년 강릉대 미대를 입학한 작가는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했다. 졸업하던 해인 1983년 어머니 병수발을 위해 1년간 작업을 하지 못하다가 이듬해 청년미술관이 주는 청년작가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인 작업에 몰두했다. 당시 건축가 김수근이 발간하던 월간지 《공간》에 작품과 평론이 실리며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1989 생장이 보여주는 만령의 시원’(조각·서울 청년미술관)을 시작으로 ‘1996 한지로 상징하는 The cosmos 전’(회화·춘천미술관) 등 조각과 회화를 번갈아 전시했다. 2014년에는 조각과 설치미술을 결합한 ‘잎새에 흐르는 강 전’(춘천미술관) 을 통해 나뭇잎에 우주만물이 담겨있음을 표현하려 했다. 나뭇잎의 잎맥은 나무가 되고 물줄기가 돼, 하나가 전체이고 전체가 하나인 불교적 의미가 강한 표현을 담아냈다는 평이다. 2016년에는 ‘돌 위에 새겨진 염원’(회화)이란 주제로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다. 10월에 전시될 ‘돌 위에 새겨진 염원’에는 강원도 내에 산재한 불상, 암각, 조형물 등 돌 위에 새겨진 문양을 작가의 시선으로 재해석해 캔버스에 옮겼다. 춘천의 청평사 돌계단 석계도 그중 하나다.

작가는 앞으로의 작업방향을 산에서 찾고 있다. 산을 다니며 보이는 만물에서 생명의 근원을 찾고 그 근원의 해답을 찾으려는 시도를 하려 한다. 언뜻 보면 스님 같기도 한 작가의 외모에서 이미 작가가 찾아나가는 작업의 방향이 보이는 듯하다.

화가이며 조각가, 다인(茶人)인 이형재 작가는 1959년 강원도 홍천에서 출생했다. 1984년 한국미술청년작가상 수상전을 가지며 한국미술청년작가회에서 회원으로 10년간 작품활동을 했다. 1985년부터 춘천미술협회원으로, 1995년부터는 강원현대작가회원으로 한일교류전과 한중교류전을 비롯해 서울현대미술제와 광주현대미술제 및 아트페어특별전에 출품하며 287회의 단체전을 가졌고, 한국미술협회원, 강원미술대전초대작가로 2008년 제1회춘천미술상 수상기념전 외 12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미국 캘리포니아 정혜사 초청으로 현장에서 대형그림을 남기기도 했으며, 의암 유인석 순국 100주년, 춘천국제마임축제, 한강살가지문화제, 빨, 춘천미술관에서 퍼포먼스를 공연하기도 했다. 1984년 다도(茶道)에 입문한 이래 춘천 칠전동 드름산 아래 ‘겸로다숙’에서 차를 통해 이웃과 다정(茶情)을 나누며 살고 있다.

오동철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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