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연식품은 2005년 3월 문을 열었다. 만두와 면류를 생산해 강릉한살림생활협동조합(현 한 살림 강원영동생활협동조합)에 납품하던 한 회사가 더 이상 납품하지 못하게 된 것이 사업추진의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만두와 면류는 한살림 소비자들 사이에서 인기상품이었다. 그러나 이를 납품할 다른 생산조직을 찾는 일이 쉽지 않았다. 한살림의 매우 엄격하고 까다로운 납품기준을 통과할 업체가 지역에 없었던 것이다.

“당시 고민이 참 많았습니다. 외지에서 납품업체를 찾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것은 강릉한살림이 취할 방법은 아니라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건강하고 우수한 품질의 상품을 필요로 하지만 지역경제 기여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수차례 논의 끝에 한살림 스스로 만들어 납품하는 ‘지역살림’의 방법을 택한 겁니다. 강릉자활후견기관과 협력해 사업단을 만들고 생산조직을 구성하게 됐습니다. 취약계층 일자리도 창출하고 지역에서 생산 된 농수산물을 활용한 판매가공 사업도 활성화시키고…. 이래저래 지역경제에 기여한다는 목적을 이루자는 것이죠. 또 한살림 소비자들에게는 신뢰할 수 있는 물품의 지속적 공급기반도 구축 한다는 일거삼득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시도였습니다.”

김대진 대표는 당시 강릉한살림 상무이사로 재직하면서 다자연 식품 설립을 적극 추진하고 이끌었다. 자활후견기관과 협력해 ‘자활사업단’으로 이 어려운 사업을 해보자고 제안한 것도 김 대표였다. 그야말로 ‘발상의 전환’이었다. 근로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경쟁력도 약한 자활근로자들과 한살림의 납품기준에 맞는 물품을 생산한다는 일은 꽤나 어려운 과제였다. 그렇다고 김 대표는 한살림의 사회적 책임과 사명에 우선해 ‘좋은 일 한 번 해보자’는 식의 시도는 아예 고려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철저한 생산관리를 통해 다자연식품의 신뢰성을 높이는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일부터 작게 시작했어요. 물냉면, 비빔냉면으로 시작해 만두, 초고추장, 불고기양념은 물론 피자까지 만들었습니다. 자활근로자 3명으로 시작 했는데 사업이 확대되면서 나중에는 30명으로 늘어났습니다. 그 중에 자활센터에서 보낸 취약 계층이 절반이 넘었습니다.”

김 대표는 사회적 책임이나 공헌보다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했고 그 판단은 적중했다. 어렵 만 원료부터 생산과정에 이르는 생산라인을 철저하게 관리했다. 안 되면 몇 번이고 반복해 될 때 까지 가르치고 관리했다. 엄격한 품질관리로 생산한 제품들이 한살림에 납품되자 소비자들이 먼저 반응했다. 그리고 안정적인 판로가 확보됐다.

 

 

 

 

 



자연히 사업은 성장을 거듭했다. 양적인 성장뿐만 아니라 질적인 성장도 이루었다. 강릉에서도 외곽지역으로 지역발전이 더딘 주문진에서 가장 좋은 기업으로 손꼽을 정도로 성장한 것이다. 작업환경이나 근무환경이 좋다보니 이직률도 적다. 초기에 참여 했던 자활근로자들 모두 탈수급(생계급여지원에서 벗어난 상태를 의미)한 것은 물론 아직도 다자연에 근무하는 사람이 많다. 그들에게 다자연은 자랑거리이자 자부심 그 자체였다.

김 대표는 한살림의 말단직원으로 시작해 ‘살림살이’를 책임지는 상무이사의 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업활동과 경험을 쌓아 왔다. 자활기업은 빈곤극복과 경영적 성과를 내서 지속가능한 일자리 창출을 해야 한다. 또 하나, 믿을 수 있고 건강한 먹거리를 만들어내는 일과 사회적경제 조직으로서의 역할이 있다. 그렇게 나아갈 길이 분명한 다자연식품을 처음부터 김 대표가 맡아서 책임경영을 해왔던 이유다. 김 대표는 다자연 설립 당시부터 지금까지 초지일관 성공한 자활기업이 될 수 있도록 기반을 굳건히 다져왔다. 다자연은 2007년 자활기업으로 전환했다.

 

 

 

원응호 시민기자 (강원도광역자활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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