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가시고기류는 가시고기, 잔가시고기, 큰가시고기 등 3종이다. 원래 바다에 살던 이들은 민물에 완전히 적응해 민물에서만 살아가는 가시고기와 잔가시고기가 있고, 큰가시고기와 같이 민물에 올라와 산란하고 부화 후 다시 바다로 이동해 성장하는, 민물과 바다를 같이 생활 터전으로 살아가는 종류도 있다. 따라서 우리 강원도에서 가시고기류를 볼 수 있는 곳은 바다와 접한 동해안의 하천들뿐이다.

실물을 보지 못했어도 가시고기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아빠 가시고기의 헌신적인 자식 사랑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작은 물고기에 많이 감동하기도 했을 것이다. 봄이 되면 수컷 가시고기는 물풀이나 식물 조각들을 물어다 둥지를 만들고, 암컷을 불러들여 알을 낳는다. 암컷이 알을 낳고 떠나버린 둥지에 수컷이 홀로 남아 둥지속의 알과 새끼들을 무사히 키워 독립시킨다. 하지만 정작 수컷은 새끼들을 키워내느라 기력이 다해 죽음을 맞이하고야 만다.

물고기들은 모성애보다는 부성애가 훨씬 강하다. 물고기들은 암컷이 알을 낳은 직후에 수컷이 그 위에 정자를 내보내 알을 수정시킨다. 이 간발의 차이에 암컷은 수컷에게 알을 맡겨 버리고 달아날 수 있다. 수컷에게 양육의 책임을 전가시켜 버리는 것이다. 반면 체내수정으로 자신의 몸 안에 알이나 새끼를 품고 있어야 하는 조류나 포유류의 암컷들은 강한 모성애로 고스란히 양육의 부담을 껴안아야 한다. 모든 생물은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며 암수 사이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이렇듯 암컷이 아닌 수컷 물고기가 알이나 새끼들을 지성으로 보살피는 까닭에는 아주 미묘한 생물학적인 연유가 있다.

그런데 뜬금없이 왜 가시고기 이야기일까? 의아하게 생각하실 분들이 많을 것 같다. 지리적으로 바다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깊은 내륙지방인 우리 춘천에는 아예 가시고기가 살지 않는 지역이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공지천 일대에 잔가시고기가 나타난다는 소문이 있었고 실제로 필자도 확인을 할 수 있었다. 아마도 누군가가 영동지방에서 잔가시고기를 잡아다 키웠을 것이고, 얼마간 지나 싫증이 나자 이를 죽일 수 없어 공지천에 내다버렸을 것이다. 민물에 완전히 적응해 사는 잔가시고기에게는 공지천에서 번식하며 사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지방에서 잡아온 물고기를 키우다가 혹여 이러한 문제로 고민하는 분들이 있다면 잡아온 곳에 가서 풀어주거나, 그럴 수 없다면 불쌍하다 생각마시고 과감히 처리하는 것이 건강한 생태계의 유지를 위해서 백 번 바람직한 일이다. 기억하시겠지만 횡성의 피라니아

사건도 똑같은 맥락에서 발생한 일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아주 사소한 일도 생태계에는 엄청난 재앙으로 나타날 수 있다. 블루길과 배스의 감당할 수 없는 생태계 교란처럼.

 

 

송호복 (사단법인 한국민물고기생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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