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민 대부분은 너무나 안타깝게도 중국을 경유해 백두산과 천지를 접한다. 2015년 어느 날 필자도 중국 연길을 지나 소위 서파와 북파를 통해 다녀온 적이 있다. 하지만 이틀 동안 두 번이나 올랐으나 비바람과 안개 때문에 천지가 제대로 열린 것을 보지 못했다. 당연히 천지의 물을 만져보는 것도 불가능했다. 나는 함께 간 일행들에게 2003년 9월 22일 보았던 핸드폰의 천지연 사진을 보여 주었다. 그들은 새파란 하늘과 천지의 맑은 물을 보고 감탄하면서도 북한을 통해 백두산을 올랐다는 사실 자체를 더 부러워했다.

백두산 천지에 나들이를 나온 북한 주민들

천지의 물은 중국 쪽으로는 ‘승사하(昇嗣河)’라는 협곡을 통해 흐르다가 68m의 장대한 비룡폭포(장백폭포)에서 수직으로 떨어져 쑹화강의 발원이 된다. 또한 백두산 산정(山頂) 남쪽에서는 압록강이, 무두봉(無頭峰, 높이 1천930m)의 북쪽 기슭에서는 두만강이 시작되는 발원지이기도 하다.

우리는 동백두(동파, 북한지역) 정상에서 케이블카(공중삭도)를 타고 천지로 내려갔다. 이 삭도는 향도봉(백두산정류소)과 천지호반(천지정류소) 사이에 건설돼 있는데, 길이가 1천300m에 운행 시간은 7분(초속 4m)이 소요된다. 5개의 객실에 각기 4명씩 탈 수 있다. 이 케이블카는 오스트리아제로 1993년 6월 착공해 1995년 9월 완공됐는데, 여객용 삭도로서는 북한 최대 규모다.

백두산 천지에서 필자

천지는 넓이가 9.16㎢, 둘레는 14.4km이며, 불규칙적인 타원형으로 생겼다. 평균 깊이가 213.3m, 최대깊이가 384m라고 한다. 천지 안쪽은 70~90°의 절벽으로 되어 있고, 둘레에 장군봉(2천750m), 향도봉(2천712m) 등 주봉들과 10여 개의 봉우리들이 있다. 천지의 물은 초록색이며, 12월 상순부터 6월 중순까지 얼음이 어는데 얼음의 평균 두께는 1.5m라고 한다.

우리는 천지연변에 하얀 카펫을 깔고 호텔에서 준비해 온 점심식사를 했다. 떡메를 쳐서 떡을 만들고, 종업원들이 숯불을 피워 염소고기를 구워 주었다. 천지에서 잡아 올린 산천어는 회와 어죽으로 요리해 먹고, 산천어 피는 들쭉술에 섞어 한 잔씩 권해 주었다. 산천어는 1984년 100마리를 천지에 풀었는데 현재 약 240여만 마리가 서식하고 있으며, 12년 된 놈의 크기는 72㎝나 된다고 한다.

천지에는 천지를 관리하는 보트가 한 대 있다. 우리들의 요청이 받아들여져 4명씩 타고 천지연을 돌아보았다. 보트에서 바라보는 백두산과 하늘은 소름끼치도록 맑고 아름다웠다. 케이블카와 선착장, 모래사장과 천지를 둘러싼 절벽이 교묘하게 어울렸다. 아쉽게도 호수의 절반은 중국 땅이라 가운데에서 돌아 나와야 했는데 아마도 중국 쪽 북파나 서파에서 누군가 이곳을 내려다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크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서울에 돌아와 들어보니 천지에서 보트를 탔다는 사람을 보지 못했단다. 우리는 정말 행운아들이다.

우리가 천지에 머무르는 동안 관광차 왔다는 주민들 몇 명을 만났다. 아주머니 둘, 어린이 둘, 어린아이 둘 모두 여섯이다. 신발이 똑 같다. 아주머니들은 검정 색, 어린이들은 빨강색이다. 자연스럽지 못한 그들은 우리에게 반갑다는 인사를 수없이 했다. 불청객인가 아니면 연출에 의한 손님인가 잘생긴 북한의 풍산개 한 마리가 우리를 반겨준다. 안내원은 천지 감상록(방명록)을 내밀었다. 우리 일행들은 살아생전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각자 소회를 방명록에 남겼다.

백두산 화산은 1702년에 마지막으로 분출됐으며, 산림한계선은 해발 2천400m다. 그러니까 2천400m 이하에서만 나무나 풀이 자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 산림한계선 아래로 이깔나무, 낙엽송, 접비나무, 들쭉나무와 이름 모를 꽃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모습을 한가득 눈에 담아 내려왔다.(2003. 9. 22. 월)

강성곤(전 한국학중앙연구원 기획조정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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