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푸르트의 한인식당에서 뮌헨에서 막 올라온 독일 친구와 식사를 하려고 하는데, 식당손님들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불안한 분위기가 감도는 통화내용을 듣고 나는 독일인 친구에게 “네가 방금 떠나온 뮌헨에서 테러가 난 것 같다”고 전했다. 한국인 여행 가이드들의 통화소리가 점점 다급해졌다. 식당주인이 텔레비전을 뉴스채널로 돌리자 ‘뮌헨올림피아쇼핑센터에서 총기난사 테러 발생’이라는 자막이 떴다. 손님들은 텔레비전에 집중했고, 여행 가이드들은 고객들을 안정시키며 차선책을 찾기에 바빴으며, 혹자는 해당뉴스를 휴대폰으로 검색했다.

뮌헨을 포함해 바이에른주의 철도가 전면 통제되었기 때문에 프랑크푸르트에서 뮌헨으로 가던 기차가 운행을 멈췄고, 사람들은 다른 도시에서 내려야 한다고 했다. 독일인 친구는 가족에게 짧고 침착하게 자기의 안부와 당부의 말을 전하고 전화를 끊었다. 비상사태에서 독일인이 냉정할 만큼 침착하다고 생각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겨울 프랑스 파리에서 테러가 났을 때, 독일 베를린도 더 이상 테러안전지대가 아니라고 했지만 그것에 대해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내가 먼저 파리 테러에 대해 두렵다고 입을 떼자, “우리는 그냥 일상생활을 하면 돼. 경찰들이 눈에 띄게 많아진 것을 못 봤니? 두려워한다고 테러가 안 일어나진 않아.” 친구들은 너무나 담담했다. 내가 “경찰이 다 막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하자 그들은 적잖이 당황했다. “오, 은비야! 한국은 세금 안 내니? 별 걱정을 다 한다. 그들은 우리를 지키려고 경찰이 된 거야. 국가가 우리를 지키지 못한다면 그것은 국가에게도 무척 괴로운 일이야.” “너 왜 이렇게 당연한 걸 묻니? 그 정도 기능도 못하면 그게 국가니? 그렇게 불안한 데서 어떻게 사니?” 친구들은 내가 뭐라도 한 마디를 해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음~ 모든 국가가 독일 같지는 않아. 내 말이 이해가 안 된다면, 너희들이 다른 나라에 가서 한 번 살아볼래?” 친구들은 마구 손사래를 쳤다. 자기들은 독일이 좋단다. 영원히 독일에서 살 거란다.

하노버 축구경기장에서 독일 대 네덜란드 친선축구경기가 열리려는 날이었다. 축구사랑이 남다른 두 국가의 흥미진진한 경기가 예상되었고, 독일의 총리와 고위간부들이 자리한다고 했다. 하지만 경기 5분 전에 테러의 기미가 엿보였고 방송이 나가자, 그 어떤 소란이나 무질서 없이 모두들 경기장에서 퇴장했다. 생활용품을 파는 프랑크푸르트의 한 매장에서 ‘정원에 벌레가 많아서’ 라는 이유로 화학약품을 구매한 자들의 주소지에 정원이 없음을 수상히 여긴 경찰이 탐문 후에 급습했다. 그곳에는 화학약품으로 제조된 폭탄들이 ‘결단의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테러 그 극악무도함 자체에 희생당하는 이들도 있지만, 파괴된 상황에 대한 공포 때문에 침착함과 판단력을 잃고 희생되는 이들도 많다. 당연한 말이지만 재난과 사건사고에 대해 침착하게 대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우리가 독일인들의 침착함만 본받으면 되는 일일까? 독일인들의 침착함에는 이유가 있었다. 경찰이 수색에 만전을 기하고 있고 만일의 사태 발생 시 국민들을 지켜줄 것이라는 신뢰, 긴급한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국가만 따르면 된다는 신뢰, 희생자가 나오더라도 국가가 가족들을 위로하고 응당한 대가를 치러줄 것이란 신뢰 말이다.

독일인이라고 왜 테러를 안이하게 여기겠는가? 현재의 테러사태 말고도 근 1세기 동안 두 번의 세계전쟁과 동서분단을 겪었으며 통일 후에도 이념갈등과 혼란에 의한 뼈아픈 일들을 많이 겪은 국가가 독일이다. 이들이 테러를 가볍게 여길 국가가 절대 아니라는 말이다. 베를린에서 또 한 번의 테러용의자들이 검거됐다. 하지만 대대적이고 상세하게 보도되지 않았다. 베를린의 정확히 어디에서 어떻게 검거된 건지 궁금해 하는 나에게 친구들은 “그걸 왜 알고 싶어 하니? 국가에서 알리지 않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야. 심심해서 그러는 거라면 차라리 할리우드 액션영화나 봐라”라고 했다. 독일인들의 국가에 대한 신뢰는 정말이지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정은비 시민기자 (베를린·타악기연주자)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