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隱遯), 은일(隱逸)은 자신의 사상이나 행위가 전혀 현실화될 수 없을 때, 즉 세상의 사고방식과 부합되지 않을 때, 비로소 선택하는 행동이라고 한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은둔자나 은일자는 고구려의 을파소, 신라의 왕거인, 원술, 최치원 등이다. 이들은 모두 현실정치로부터 소외와 저항, 그리고 유교적 실천덕목에서 벗어나 자연의 경지에 몸을 맡기(無爲自然)는 은둔자들이었다.
창촌3리 둔일마을 입구

춘천에 은둔한 대표적인 사람은 고려시대의 진락공 이자현(李資玄 1061-1125) 거사다. 고려 중엽 이자현은 인천이씨로서 당시 이자겸의 사촌이었다. 이자겸의 조부 이자연의 세 딸이 문종의 비였고, 이자연의 맏아들 이의의 딸은 선종의 비, 둘째 아들 이호의 딸은 순종의 비였다. 이자현은 이의의 아들이다. 이렇듯 왕실 외척으로서 영화를 누리며 과거에 급제해 대약서승이라는 벼슬을 했지만, 이자현은 관직을 버리고 지금의 청평산에 운둔했다. 후에 예종이 남경(지금에 서울)에 행차했을 때 한 번 만났다.

그 후로는 왕의 부름에도 응하지 않으며 37년 동안 청평산에 은거하다 죽었다. 후에 진락(眞樂)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청평산 식암(息庵)에서 은거할 때의 모습이 청평사에 있는 문수원비문에 있다. “배가 고프면 향기로운 밥을 먹고 목이 마르면 이름난 차를 마시니, 오묘한 쓰임이 종횡으로 이루어져 그 즐거움이 끝이 없었다.”
청평사에 있는 이자현 은자 유적 중 차와 관련돤 유적

오늘 내가 이자현을 소개하는 것은 춘천이 다도(茶道)의 도시로 태어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또한 강촌에는 행정상으로는 창촌3리이지만 속칭 둔일(遯逸)이라는 마을이 있기 때문이다. 이 마을에는 고려초기의 삼층석탑이 있으며, 지금도 조용하기 그지없어 세상을 등지고 살고 싶은 마을이다. 강촌역에서 강촌IC 방면으로 403호 지방도로를 지나다 보면 마을은 보이지 않고 마을 표지석만 보인다.

이러한 역사를 간직한 강촌에 ‘한국전통다례체험관’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사람이 있다. 매우 기쁘고 의미 있는 발걸음이라 생각돼 2017년 봄 개관에 기대하는 바가 크다. 나는 다도에 문외한이지만 들려오는 소리를 들어보면 현재 우리나라의 다도예절에 일본의 문화가 많이 스며있다고 한다. 기왕에 강촌에 전통다례 체험관을 설립한다면 유구한 우리의 다도 역사를 바르게 세우는 일도 함께 해주길 기원해 본다.

한희민 시민기자(강촌문화마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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