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마르고 차가운 기운이 앙상한 나뭇가지 끝에 걸리고,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라는 낙엽은 가로를 흩날립니다. 가을은 그렇게 스산한 계절인가요? 남국의 날을 이틀만 더 허락해준다면 무거운 포도에 단맛이 스미고, 익어가는 과수의 황홀한 채색에 시력을 회복하며 적극적인 삶에 임한다는 주옥같은 시구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가을은 풍요로운 수확의 계절이며, 동면을 기다리며 갈무리되는 황국단풍(黃菊丹楓)의 시기입니다. 천고마비인 만큼 청명하고 맛있는 가을 말들이 있습니다. “가을 상추는 문 걸어 놓고 먹는다”고 했듯이 가을에는 특히 상추가 맛이 좋다고 합니다. 또, “가을 물은 소 발자국에 괸 물도 먹는다”는 말처럼 가을 물의 깨끗함을 강조하는 말도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자연 속에서 먹고 마시고 숨 쉬며 생활하는 또 하나의 천지자연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소(小)천지라고 합니다.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자리에 누워야 합니다. 즉 태양의 운동과 같이 생활해야 합니다. 여름에는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야 되며, 가을에는 일찍 자고 여름보다는 좀 늦되 일찍 일어나야 합니다. 추분 때까지는 태양이 적도 위에 있기 때문에 아직 낮에는 따뜻하고, 밤은 차가워 일교차가 큽니다. 한 여름의 습기도 물러갔습니다. 차갑고 건조한 기운이 자리합니다. 바로 이것! 첫째 ‘차가운 기운’, 둘째 ‘건조한 기운’. 이것 때문에 가을철 특유의 질환이 발생합니다.

차가워진 기운은 인체의 모든 생리대사를 위축시킵니다. 혈액순환에도 장애가 옵니다. 신체 각 부분에 영양공급이 저하됩니다. 그래서 경직된 신체적 구조, 즉 전신 근육통, 전신 쇠약감이 잘 일어납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몸을 따뜻하게 해줘야 되겠죠. 운동을 하세요. 따뜻한 꿀물을 드세요. 꿀은 각종 들꽃들 특유의 아미노산과 포도당을 흠뻑 머금은 영양 덩어리입니다. 운동으로 근육을 풀어주고 대사를 높이며, 꿀물로 전신에 영양을 공급하는 것은 위축된 몸과 마음을 풀어 주는 아주 권장할 만한 것입니다.

건조한 기운은 수분을 말려 버립니다. 코, 그리고 피부가 건조해지네요. 촉촉한 피부는 최전방의 방어군입니다. 촉촉한 물질이 말라서 건조해지면 인체는 쉽게 병에 걸립니다. 그래서 습기를 공급해줘야 합니다. 보습제를 사용하고, 피하에 영양공급, 즉 혈액순환을 잘 시켜주면 보완이 됩니다. 피부를 마사지하듯 해 주세요. 그리고 따뜻한 모과꿀차를 권합니다. 구기자차를 드셔 보세요. 콧속(점막)이 마르는 것 역시 피부의 촉촉한 물질과 성격을 같이 합니다. 그 물질이 말라서 각종 자극에 대단히 민감해집니다. 곧바로 기침, 아니 재채기와 콧물이 날 수 있겠죠. 이것이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감기 증상입니다. 그럴 때는 콧속을 식염수로 세척하거나 미지근한 맑은 물로 자주 씻어 주세요.

이렇듯 차갑고 건조한 것이 문제입니다. 제일 보편적인 방법으로는 몸을 따뜻하게 하고, 따뜻한 물로 자주 목을 축이세요. 인체의 70%가 물이랍니다.

제 철에 나는 음식을 드세요. ‘불시불식(不時不食)’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때가 아니면 먹지 않는 것이지요. 삼시세끼도 되겠고, 가을에는 가을 음식을 드시라는 겁니다. 가을은 봄과 여름을 지나며 제 맛이 완연히 깃든 내용물을 머금고 있습니다. 다 익었습니다. 이제 저장을 해야겠기에 먹는 일만 남았습니다. 밤, 대추, 사과 등등 많이 드세요. 과식은 금물입니다. 약이 아닌 음식입니다. 체질이 아닙니다. 무엇이든지 드세요. 음식은 음식일 뿐인 것입니다. 인간은 소천지요, 자체가 자연이며 자연의 일부분입니다. 가리지 마세요.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요, 음식은 음식이라.

이준희 (하나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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