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은밀한 일상이 돼버린 춘천의 높은 방사능 문제에 대해 가까운 지인들에게 얘기할 때마다 ‘정부에서도 측정하고 있지 않느냐’며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이하 ‘기술원’)에서 운영하는 ‘국가 환경방사선 자동감시망’이 인터넷에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 기술원에서 발표한 춘천의 방사능 수치는 131nSv/hr. 춘천방사능생활감시단(이하 ‘감시단’)에서 측정한 수치와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감시단의 측정이 잘못된 건가 싶어 감시단 휴대용 측정기를 가지고 기술원의 측정기가 설치돼 있는 강원대 캠퍼스에 가서 비교측정도 해봤다. 그 위치에서는 별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거기에서 열 걸음만 벗어나도 휴대용 측정기의 수치는 튀어 올라갔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기술원의 측정기는 춘천에서 가장 방사능 수치가 낮은 곳에 설치돼 있는 것이다. 감시단 회원 수십 명이 수개월에 걸쳐 춘천의 신시가지 구석구석 측정을 해봐도 이렇게 낮게 나오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는데, 어떻게 기술원의 기기는 정확히 그 지점에 설치된 것일까? 이 우연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경험을 해본 나로서는 자동감시망에 보고되고 있는 수치들이 과연 신뢰할 만한 대표성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몇 달 전 기술원 직원이 와서 춘천의 방사선 수치를 측정하고 갔다. 평일 오후에 와서 측정하는 바람에 직장에 매어 있는 나로서는 현장에 가볼 수가 없었다. 감시단 측정기의 정확도도 함께 확인했다. 감시단의 측정기는 정확했고 결론도 동일했지만 해석은 달랐다. 춘천이 다른 지역에 비해 방사능수치가 분명히 높게 나온다는 것에는 그들도 동의했다. 사람들의 이동이 가장 빈번한 남춘천역을 예로 들자면 300-400nSv/hr가 측정됐다.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가 권하는 인체 허용치는 연간 1mSv 이하다. 이를 시간당 nSv 단위로 환산하면 115nSv/hr 이하가 된다. 권고수치의 3배가 넘어갔다. 하지만 수치에 대한 해석은 달랐다. ‘그 수치가 과연 인체에 유해한지에 대해서는 본인들이 판단할 수 없다’는 거였다. 어쩌면 당연한 얘기다. 그들은 측정을 하려고 온 사람들이지 유해성을 판단하러 온 사람들이 아니니까. 그런데 거기에 은근슬쩍 이런 말을 덧붙였다. “인도에서도 현재 수치보다 더 높게 나오는 지역에서 역학조사를 했지만 암 유발이나 인체에 유해하다는 증거는 없었다.” 그러니까 안심하라는 뉘앙스의 얘기를 한 것이다.

현장에 없던 나는 기술원에 그 근거 논문을 요구해서 읽어봤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의학계에서 이미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방사선(라돈)과 폐암의 연관성에 대해서조차 연관성이 없다며 부정하는 수준의 연구였다. 나는 곧바로 기술원에 전화를 했다. 어떻게 이런 수준의 논문을 근거로 춘천지역이 문제없다는 얘기를 할 수 있는지 항의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결코 문제없다는 얘기를 한 적이 없다고 발뺌을 했다. 저선량 방사능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고 자신들이 판단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기 때문에 모른다고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수많은 연구들이 저선량 방사능과 암 발생률 사이의 연관성에 대해 입증하고 있는 상황에서 얼핏 보면 가치중립적으로 보이는 ‘모른다’는 태도는 과연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일까? 그들은 어느 한 쪽도 편들지 않음으로써 한 쪽을 편들고 있었다.

아직도 춘천의 방사능 수치의 위험성에 대해 의문을 갖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분들에게 세계보건기구(WHO)에서 공식적으로 명시한 다음의 문장을 읽어주고 싶다. “(대량의 방사능에 급성으로 노출되었을 때에 비해) 낮은 선량의 방사능에 장기간 노출되었다면 손상이 회복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위험성은 상당히 낮아진다. 하지만 암과 같은 장기간의 부작용의 위험성은 여전히 존재하고 이는 수 년 혹은 수십 년 후에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효과가 항상 발생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 가능성은 노출된 양에 비례해서 커진다. 아이들과 청소년은 성인에 비해서 훨씬 민감하므로 그 위험성이 더 높다.”

아직 문제는 끝나지 않았는데 시간은 대책 없이 흘러간다. 그리고 우리들은 계속 여기에서 살고 있다.

양창모(가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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