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미는 어디를 가나 지천이다. 하천에서나 호수에서나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다. 흔하다는 것은 그만큼 적응력이 강하고 튼튼하고 번식력이 뛰어나고, 까다롭지 않다는 의미일 것이다. 너무 흔한 나머지 때때로 피라미 같은 놈들이라고 무시를 당하기도 하고 하찮게 취급당하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강의 중상류에서부터 중류, 그리고 호수까지 물고기의 세계는 거의 피라미가 평정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피라미(수컷)

인구가 늘어나고 산업이 발달하면서 수많은 하천들이 수난을 당했다. 굽이쳐 흐르던 강이 일직선이 됐고, 깊은 곳과 얕은 곳이 편평해 졌으며, 자갈밭과 모래밭이 파헤쳐지고 오폐수가 유입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물고기들이 변화해가는 환경에 적응이 버거워 일부는 사라지기도 하고, 살기에 적당한 곳을 찾아 이동하기도 하며, 또는 근근이 버티며 힘겹게 살아가기도 한다. 하지만 생물체가 살지 못할 만큼의 수질만 아니라면 피라미는 어느 곳에서나 잘 적응해 살아간다.

하천에서 여울타기를 즐기는 피라미는 10~15cm쯤 되는 크지 않은 물고기다. 산란기는 5~7월경인데, 이즈음이면 수컷 피라미는 뒷지느러미가 커지고 주둥이 부분에는 추성이라고 부르는 거친 돌기들이 나타나며, 초록색, 하늘색, 붉은색이 조화를 이루어 화려하고 현란한 혼인색을 드러낸다. 이렇게 혼인색이 나타난 피라미는 더없이 아름답고 용감해 보이는데 따로 혼인색이 나타나지 않아 수수한 은빛을 띠는 암컷 피라미와 구별해 ‘불거지’라고 부르기도 한다.

산란기가 되면 피라미들은 떼를 지어 여울 부근에 모여드는데, 화려하게 변신한 수컷 피라미는 산란하기에 좋은 모래와 자갈이 적당히 섞인 목이 좋은 약한 여울에 자리를 잡고 자태를 뽐내며 암컷의 선택을 기다린다. 산란은 흙탕물을 자욱이 일으키며 진행되는데 알을 모래에 부착시켜 흐르는 물에 떠내려가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아직 암컷의 주의를 끌만큼 충분히 성장하지 못한 작은 수컷들은 산란장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다가 큰 수컷의 산란에 재빨리 끼어들기도 하고, 근처의 다른 피라미들은 쏟아지는 알을 주어먹기 위해 쏜살같이 달려들어 아수라장을 방불케 한다.

사람의 손을 많이 탄 도시 주변의 하천은 어느 곳이나 피라미가 주인이 된다. 도심을 흐르는 하천인 서울의 양재천이나 탄천도 예외 없이 피라미가 우점종이다. 춘천의 공지천이나 율문천변을 산책하다가 여울의 돌 틈 사이를 빠르게 헤엄치는 작은 물고기들이 보인다면, 이들의 7~8할은 피라미라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피라미만큼은 환경변화에 능숙하게 적응하여 종족을 번성시킬 수 있는 뛰어난 능력을 가진 물고기다.

송호복 (사단법인 한국민물고기생태연구소장)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