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에 ‘미친’ 소설가 전상국 분단의 아픔 그린 《우상의 눈물》 등 '주옥'

<춘천사람들> 창간 1주년, 지령 50호를 맞아 ‘작가의 작업실’은 분단과 이산가족, 학교 현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문제소설(?)로 한국 문단에 큰 획을 그은 전상국 작가를 만났다. 70년 분단의 역사에서 잠시 무르익던 남북화해의 분위기는 어느새 다시 꽁꽁 얼어붙어, 한반도는 다시 냉전시대로 돌아갔다. 이러한 현실에서 전상국 작가를 통해 민족분단을 되돌아본다. 아울러 지금은 춘천의 대표적 관광지로 자리매김한 김유정문학촌의 촌장인 작가에게 춘천의 앞날에 대해서도 묻는다.<편집자>

김유정 이야기만 나오면 생기가 넘치는 사람. 소설가 전상국을 두고 하는 말이다. 김유정 이야기만 나오면 표정이 달라지는 것을 스스로도 느낀다. 그래서 그는 김유정에 미친 사람이다. 소설가 전상국은 한국에서 가장 많은 문학상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우리나라 문단사에 큰 획을 그은 작가다.

전상국 작가(사진=김남순 시민기자)
전상국 작가(사진=김남순 시민기자)

그는 해방되기 5년 전인 1940년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 동창마을에서 태어났다. 작가의 할아버지는 1919년의 동창만세운동에서 독립선언서를 읽었다. 한국전쟁 때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작가는 홍천에서 한국전쟁을 고스란히 겪었다. 전쟁과 전쟁으로 인한 가난을 겪으며 생겨난 위축감과 열등감으로 그는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편이었다고 스스로 기억한다.
가난으로 책을 살 수가 없어 서점에 진열된 책을 읽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춘천고등학교를 진학한 그는 고등학교 문예반에 들어가 글을 쓰겠다고 했다. 그러나 당시 문예반을 지도하던 선생님으로부터 “문장력과 어휘력이 떨어지니 너는 글을 쓰지 말라”는 질책을 들었다. 그 말이 그에게는 약이 됐다. 그 후 수많은 책을 읽으며 문장력과 어휘력을 키웠다. 그는 사전에 나오는 문장이 아닌 자신만의 문장을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했다. 의성어나 의태어를 문장으로 옮기는 공부를 하기도 했다. 요즘 SNS에서 많이 사용되는 것처럼 모음을 사용하지 않고 자음만 사용하는 ‘ㅋㅋ’, ‘ㅎㅎ’ 따위를 처음 소설에 쓴 사람이 아마도 자신일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소설 중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은 사북면 인람리를 무대로 한 〈아베의 가족〉일 것이다. 고등학교 때 화천으로 학도호국단 행군을 하면서 인람리를 지난 인연으로 그 마을이 소설의 무대가 됐다. 당시 인람리는 수몰되기 전이었다. 수려한 경치를 자랑하는 인람리는 전쟁 전 38선과 맞닿은 접경지였고, 1964년 춘천댐 건설로 수몰된 지역이었기에 기억이 강렬했고 소재로 삼기에 탁월했다.

〈아베의 가족〉은 전쟁의 비극이 만든 이민사,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겪은 여성들의 고난, 외국인에 의한 상처, 그를 통해 탄생한 혼혈아 문제 등 분단과 전쟁의 상흔을 간직한 인람리가 수몰되면서 해결되지 못한 아픈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인람리가 수몰되고 15년이 지난 1979년에 출간됐다. 그이 집필실에 ‘아베의 가족’이란 문패를 걸어놓을 정도로 그에게 〈아베의 가족〉은 아주 특별하다. 그 외에도 〈하늘 아래 그 자리〉(1978), 〈고려장〉(1978), 〈외등〉(1979) 등을 통해 전쟁으로 인한 상처로 고통 받는 가족사를 다루며 분단현실의 모순을 파헤쳤고, 연작소설 〈길〉(1996)에서는 이산가족 문제를 조명했다. 그는 수십 편의 소설을 쓰면서 분단문제와 자신이 일했던 교육현장의 문제에 천착했다.

작가는 문학을 “글 쓰는 신명”이라고 말한다. 평생 할 수 있는 것이 글쓰기였기에 그 길을 선택했다. 그는 소설을 쓰려고 하는 이들에게 “억지로 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쓰고 싶을 때 쓰라”는 것이다. 물이 차야 넘치는 것처럼 “물이 넘치듯이 작품의 소재나 내용이 가득 담길 때를 기다려야 한다”며 조급하지 말 것을 조언한다. 더불어 “남의 작품을 흉내 내서는 안 된다”며 “실험적이어야 창작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김유정문학촌, “마을주민들과 함께 해야 할 일”

그런 그가 김유정에 미친 까닭은 무엇일까? 그는 “짧은 생이지만 31편의 단편소설 중 신동면 증리지역을 무대로 13편의 소설을 남긴 소설가이고, 향토성과 해학성에서 김유정만한 소설가는 없기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1930년대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사랑 받는 소설가가 김유정 말고 또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김유정을 “글에 미쳤던 사람”이라고 말한다. “80년이 지났지만 그 감성이 오롯이 전해지는 그의 작품성을 알고는 미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는 2005년 대학에서 퇴직한 후 ‘김유정기념사업회’에 매진했다. 당시에는 1960년대부터 있었던 김유정기념사업회가 명맥만 유지되던 때였다. 그가 서울에서 내려와 강원대학교에 임용됐을 때 춘천에는 등산을 하는 이들이 거의 없었다. 그는 김유정 소설을 따라 금병산에 오르며 소설 속 무대를 하나하나 찾아다녔다. 그러다 1993년 당시 민주산악회원들과 함께 김유정 등반대회를 개최했다. 1천500여명이 참가한 김유정 등산대회는 1995년 중단됐지만, 그 후 김유정은 춘천에서 새로운 가치로 거듭났다.

퇴임 후 김유정문학촌장을 맡은 그는 김유정 소설의 무대가 된 금병산과 증리 일대에서 소설속의 흔적들을 찾아냈다. 금병산 등산로에 ‘김유정 등산로’라는 이름을 붙이고, ‘금 따는 콩밭 길’, ‘만무방길’ 등 ‘실레마을 이야기길’을 만들었다. ‘김유정문학관’이라고 하지 않고 ‘문학촌’이라고 이름 지은 것은 마을 전체가 무대이기 때문이다. 또 단순히 작가를 선양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마을주민들과 함께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실레마을이 춘천 문화예술의 허브가 돼서 지역주민들의 소득증대에도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 김유정문학촌이 전국적인 명성을 얻어 해마다 70만 명이 넘는 방문객이 찾아오고, 올해는 100만 명 이상이 찾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전국 최초로 사람 이름을 딴 김유정역이 생겼고, 우체국과 농협이 생겼다. 김유정 소설과 관련된 이름을 상호로 한 가게들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수년 전부터 실레마을은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건물이 신축되고, 상가들이 늘어가고 있다. 신동면을 김유정면으로 고치는 작업도 준비하고 있다. 김유정문학촌은 마을주민들과 문화예술인들이 함께 운영하고 있다. 운영위원회가 구성되고 문인들이 문학촌에 근무하고 있다. 김유정문학촌은 단순한 관광지나 유적지가 아니라 김유정의 작품 속으로 들어가는 체험의 장이다. 전문가들이 참여해 만든 프로그램을 따라 방문객들은 김유정의 소설 속으로 들어간다.
작가는 정체성에 대한 문제의식이 강하다. 그래서 동백꽃이 생강나무꽃으로 바뀐 것을 아쉬워한다. 지금도 그는 생강나무라 쓰지 않고 예전대로 노란 동백꽃이라고 표현한다. 김유정문학촌에 심는 나무와 꽃은 모두가 자생종이다. 실레마을이 김유정이란 걸출한 소설가가 농촌계몽운동에 나섰던 만큼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춘천의 정체성을 찾고 대표 얼굴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가로수를 심을 때나 공원을 조성할 때, 좋다고 어디에나 있는 것을 모아놓을 것이 아니라 춘천만의 특색을 담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작가는 1960년 경희대 국문과에 입학해 1963년 졸업하고 1972년까지 춘천과 원주의 중·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쳤다. 1972~1985년까지 경희고에 근무하며 경희대 대학원에 입학해 현대문학을 전공, 1985년 강원대 교수로 임용된 후 2005년까지 재직했다.

196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행〉으로 등단한 이후 한국전쟁과 교육현장을 주요 소재로 삼은 작품을 주로 썼다. 〈동행〉과 〈하늘 아래 그 자리〉(1978), 〈고려장〉(1978), 〈외등〉(1979), 〈아베의 가족〉(1979) 등을 통해 전쟁의 상처로 고통 받는 가족사를 다루며 분단현실의 모순을 파헤쳤고, 연작소설 〈길〉(1996) 에서는 이산가족 문제를 조명했다. 〈돼지새끼들의 울음〉(1975), 〈우상의 눈물〉(1980), 〈음지의 눈〉(1986) 등에서는 오랜 교육현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학교 내에서 이루어지는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 교사와 교사 상호간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교육의 순수성을 훼손시키는 교활한 위선과 합법적인 권력의 폭력성 등을 드러냈다. 이 외에 작품집 〈우리들의 날개〉(1979), 〈외등〉(1980), 〈형벌의 집〉(1987), 〈지빠귀 둥지 속의 뻐꾸기〉(1989), 〈유정의 사랑〉(1993), 〈온 생애 한순간〉(2005) 등과 수필집 〈우리가 보는 마지막 풍경〉(2000), 〈물은 스스로 길을 낸다〉(2005),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2005) 등이 있다.

현대문학상(1977), 한국문학작가상(1979), 대한민국문학상(1980), 동인문학상(1980), 윤동주문학상(1988), 김유정문학상(1990), 한국문학상(1996), 후광문학상(2000), 불교문학상(2005) 등을 수상했다.<출처=다음백과>

오동철 시민기자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