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사상가 마셜 맥루언(1911~80)은 자신의 저서 《구텐베르크 은하(The Guten berg Galaxy, 1962)》에서 근대적인 인간을 ‘구텐베르크 인간(Gutenberg Man)’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인쇄된 책을 읽으면서 형성이 되는 인간을 말한다. 그러나 무선통신의 미디어를 이용하게 되는 새로운 문명세대가 등장하자 곧 ‘마르코니의 성운세대’로 옮겨갔다. 문자문화 혹은 문자언어가 종언을 고한 것이다.

그동안 문자언어가 정보를 텍스트로 전달했다면 전자언어는 정보를 시각화 하거나 음향화 했다. 전에는 정치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정치사상가나 시사(時事)지에 의탁해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정치 관련 콘텐츠나 이미지 사운드에 의해 정보가 습득된다.

우리가 아는 바 미디어는 의식을 재구조화 한다. 지난날 문자언어는 우리의 의식을 급진적으로 재구조화했다. 그렇다면 통신 미디어를 이용한 디지털시대에 우리 의식에는 어떤 변화가 벌어지고 있는가? 분명한 것은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더불어 문자언어가 밀려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문자언어가 퇴락하는 시점에 발행되기 시작한 《춘천사람들》이라는 신문 즉 문자매체는 우리 의식에 어떤 변화의 촉매제가 될 수 있을까? 어떤 신문이 되어야 생존력을 가질까?

문자언어시대의 매체가 가졌던 역할은 객관적 기술, 논증의 정합성, 이성적 비판이었다. 그러나 이미지와 사운드로 의식화된 대중들에겐 더 이상 냉철한 인식을 제공하는 능력으로서의 신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다만 현실의 복잡한 사태를 영웅적 스토리로 압축, 변화시키는 주관적 상상력, 플롯(plot: 사건을 인과관계에 따라 필연성 있게 엮는 방식)의 개연성, 정서적 공감이 필요할 뿐이다. 요즘 청소년들에게 장래 희망을 물으면 열에 대여섯은 카툰작가라고 한다. 문자의식 세계에서 이미지의 의식세계로 진입해 있음을 나타내는 증좌 중 하나다.

이런 이미지 언어 시대에 발행 1주년을 맞는 《춘천사람들》이 ‘신문’으로 그 낯을 유지하는 방법은 하나다. 객관적 기술, 논증의 정합성, 이성적 비판으로서의 문자매체를 지양하고 이미지화, 사운드화 해야 한다. 그것은 대중의 상상력과 플롯을 조합하고, 정서적 공감을 스토리화 함으로 산업사회에 의해 붕괴된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일이기도 하다.

《춘천사람들》이 로고스(logos: 문자)에서 뮈토스(mythos: 이미지)화 된 신문이길 기대한다.
 

허태수(성암감리교회 목사)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