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공공운수노조 보육협의회 김호연 의장

“힘들었던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그녀가 말문을 열었다. 아홉 살에 돌아가신 엄마. 엄마를 지키지 못했다는 것이 어린 그녀에게 죄책감이 되어 성인이 될 때까지 그녀를 트라우마 안에 가뒀다. “나를 아끼고 지켜주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나만 외로웠어.” 결국 눈물을 보이고 만다. 엄마의 장례식장에 섰던 아홉 살 꼬마는 엄마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엄마, 나 딱 2년만 살고 엄마한테 갈게.” 결벽에 가까웠다. 매일 밤, 잠자리에 들며 내일 깨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할 만큼 매일을 치열하고 완벽하게 살아냈다. 그런 그녀를 보살폈던 건, 탄탄하지는 않았어도 결국 ‘사회적 안전망’이었다고 그녀가 말한다.

“고등학생 때였어요. 그 때 국사선생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얘들아, 세상에는 내가 가르쳐주는 힘 있는 사람들의 역사인 정사가 있고, 그 외에 민중들의 역사를 남긴 야사가 있다. 너희는 민중의 역사도 알았으면 좋겠다.’” 그게 그녀가 학생운동을 시작한 계기였다. 원하지 않는 대학진학이었지만 졸업 후 농협 평화지점에 입사해 6개월 간 근무했다. 답답했다. 돈을 세고 통장을 관리하는 일은 그녀에게 경제적 안정을 주었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자존감은 점점 낮아졌고 도망치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는 한 폐쇄 수도원으로 들어갔다. 눈을 뜨면 맡은 소명을 다하고 남은 시간은 기도를 했다. 그때 그녀를 지켜보던 한 수녀님이 이야기했다. “너에게는 수도 성사는 없는 것 같구나. 너는 주변을 밝게 하는 잠재된 기운이 있으니 도피하지 말고 맞서라.” 수도원에서 나와 성 빈센트 보육교사 훈련원에 입학했다. 그리고 그녀는 보육교사가 됐다.

김호연(42·여) 씨는 올해 1월 전국공공운수노조 보육협의회 의장이 됐다. 그리고 노조위원장 직을 겸임하고 있다. 자신이 받았던 보호를 이제는 갚아야 한다는 마음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맡고 있다. “보육현장은 재미있고 보람됐지만 보육교사는 노동법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대표적인 직업이에요.” 보육교사들은 아침 7시 30분이면 출근을 하고 5시가 넘으면 퇴근을 한다. 당직이면 저녁 7시 30분 이후에 퇴근을 하는데 퇴근을 한다고 일이 끝나는 게 아니다. 평가인증제도나 누리과정 관련 서류, 등·하원기록부, 아동관찰 등 서류작업이 남는다. 많은 보육교사들은 퇴근 후 자신의 아이를 돌보는 와중에도 다음날 수업준비와 어린이집 온라인카페 관리, 사진정리 등의 업무를 하고 보통 자정이 넘어야 일과가 끝난다. “교사 한 명이 담당하는 서류 종류가 137개예요. 어린이집 문제가 터지면 서류를 만들어요. 보육행정에 대한 고려 없는 ‘일방적 서류 전가’는 대표적인 불만사항이에요.” “또, ‘반별 정원 탄력편성’이 큰 문제가 되고 있어요. 정부가 허용한 ‘초과 원아’는 결국 아이와 교사 모두에게 학대가 되는 것이죠. 당장은 아동비율을 줄이는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국공립 어린이집 50% 이상 확충을 주장하고 있어요.” 그 외에도 누리과정 예산을 중앙정부 예산으로 확보할 것과 유치원-보육기관 통합논의 공개, 부모를 맞벌이, 외벌이로 구별한 선별정책 ‘맞춤형 보육’ 폐기 등을 요구하고 있다. “결국 모든 요구는 ‘보육공공성’ 강화와 맞닿아 있어요. 부족한 예산, 일관성 없는 보육정책, 열악한 노동조건, 어린이집 비리 등 많은 문제는 보육을 민간이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죠. 보육이 이익의 원천이 되는 구조에서는 적은 교사 수로 많은 아이를 받는 정책이나 근로기준법 미 준수 문제 등은 쉽게 해결되지 않을 거예요.”

중앙의 일을 마치면 춘천으로 돌아와 다시 어린이집 보육교사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는 그녀. “최소 1년 이상은 현장에서 다시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싶어요. 너무 오래 지역을 살피지 못했던 것도 아쉽고.” 초등학교 4학년 딸아이가 엄마처럼 보육교사가 되고 싶다고 말을 했을 땐 기특하기도 하면서 마음이 많이 무거웠다고 한다. “늘 오늘만 사는 마음으로 살았지만 그래도 만약 내가 마흔이 되면 세상이 달라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보다 더 불안해요. 세월호의 진실은 밝혀지지 않고, 정부는 백남기 농민을 죽였고, 원전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데 큰 지진이 자꾸 일어나고, 내 아이들은 비정규직이 될 거라는 생각들이 계속 나를 괴롭혀요.” 그래서 마음이 점점 더 조급해진다고 말하는 그녀. 또 한편 그렇기 때문에 더욱 튼튼한 사회적 안전망이 되고 싶다고.

그래도 대한민국에 아직 희망이 있다고 말하는 그녀. 우리나라 국민들처럼 민주적이고 상식적인 사람들이 없단다. “비상적이고 비도덕적이고 민주적이지 않는 사람들은 기득권이에요. 우리 국민들은 이런 상황을 절대 그냥 두고 보지 않을 거예요. 우리의 역사가 그걸 증명해주고 있잖아요. 우리는 가장 빠르게 전쟁의 폐허 속에서 나라를 일으킨 사람들이거든요. 되풀이되는 역사 속에서 민족을 구해낸 것은 결국 우리 국민들 스스로니까요.”

무거운 책임을 다 내려놓고 나면, 춘천으로 돌아와 제대로 된 보육센터를 세우고 싶다고 말한다. “부모들도 보육교사들도 다들 처음 겪는 일이잖아요. 우리는 누구나 초보의 시기를 지나죠. 시행착오가 있기 마련이라고 생각해요. 한두 번의 실수로 그들에게서 유능한 보육교사, 좋은 부모가 되는 기회를 빼앗는 것보다는 ‘누구나 그럴 수 있어’라며 다독이고 격려해 좋은 보육환경을 만들어서 결국 아이들의 권리와 행복을 지켜주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

아이들을 중심에 놓고 살자고 말하는 그녀. 이미 우리 아이들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 기회는 놓쳤을지 모르지만, 그 아이들이 어른이 되고 엄마가 됐을 때는 엄마도 아이들도 모두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지금 모든 것을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르고 세상의 중심을 아이들에게 맞춰야 할 때라고.

김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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