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수분 같은 ‘마음 곳간’ 지닌 춘천시 나눔봉사단 임기수 단장

연말이 되면 각종 매체들은 미담이 될 만한 이야기를 찾는다. 낮은 곳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이나 자기 것을 흔쾌히 내어주는 기부천사들의 훈훈한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아무래도 한기가 도는 겨울이라는 계절의 특성과 연말을 맞아 한 해를 정리하자는 숨은 의미가 있지 않나 싶다. ‘식상하지 않을까’하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매년 복제되다시피 하는 이유는 그들의 진정성과 따뜻한 마음을 함께 느껴보고자 하는 바람에서가 아닐까 추측해본다.

지구 온난화로 예전처럼 춥지 않지만 올핸 겨울이 채 오기도 전이건만 서릿발 같은 한기를 느낀다. 촛불을 들어야 하는 밤이 많아질 것 같은 걱정 때문일까?

근화동에서 타이어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임기수(77세) 씨. 그의 이름 앞에는 ‘기부왕’, ‘봉사왕’이라는 애칭이 늘 수식어처럼 따라다닌다. 타이어는 겨울이 제철이라 11월부터 쉴 틈이 없다는데, 달랑 전화 한 통화로 찾아갔다. “핑계 김에 쉬어가자”며 그제야 한숨을 돌리는 눈치다. 일흔이 훨씬 넘은 나이에도 정비부터 물건 재고관리, 손님 관리 등 그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인터뷰 중에도 찾아오는 손님을 맞이하고 배웅하느라 분주하다.

“내가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전부 주위 사람들 덕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생 갚아야 해요. 내가 어려운 고비를 여러 번 겪었거든요. 그때마다 주위에서 도와줬어요. 사람들에게 그만큼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거죠.”

그는 현재 춘천시복지위원협의회 회장이면서, 지난 2013년 출범한 강원도사회복지공동모금회 춘천시 나눔봉사단 단장을 맡고 있다. 또 개인 고액 기부자 클럽인 ‘아너 소사이어티’에 강원도에서 9번째로 가입했다. 5년 동안 1억을 기부하면 되는데 2년 만에 기부를 끝내고 가족들과 함께 가족 아너 소사이어티 멤버가 됐다. 강원도에서는 최초의 일이다.

“제가 16살 때 춘천에 왔는데 버스 터미널에서 펑크 난 타이어 때우는 일을 했어요. ‘해방 타이어’라고 했다고. 그때 벌이가 좋았죠. 열심히 성실하게 사니까 주위에서 가게도 차려줬어요. 그러다가 1980년에 큰 부도를 맞았지. 1억1천만원 어음을 끊어놨어요. 겨울에 한창 벌어 갚으려고. 그때 5천4백만원이 부도가 났어요. 그랬더니 어떻게 알고 로터리클럽 회장이 돈 갖다 쓰라고도 했지. 다행히 한국타이어에서 무이자로 나눠서 갚게 해줘 큰 위기를 넘길 수 있었어요. 제가 인정을 받았다는 증거 아니겠어요? 약은 사람은 오래 못 가. 당장은 좋을지 모르지만. 저는 빚 갚는 거예요. 주위에서 도와주지 않았다면 이 자리에 올 수도 없는 거잖아. 안 그래요?”

올해 전국 아너 소사이어티 대회를 그가 주관했는데, 그 자리에서 세 사람이 기부약정을 했다고 한다. 또 다문화 청소년을 위해 만들어진 인순이의 ‘해밀학교’에도 4억원이라는 큰돈을 연결해줬다. 이 밖에도 다양한 곳에 많은 사람들이 기부를 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그가 이야기를 하면 대체로 기부를 약속한다고 한다. 그의 작업능력(?)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명령하지 않고 ‘함께 해 줄 수 없겠나’라고 부탁을 한다는 것. 또한 내 것을 내어 놓고 먼저 솔선하는 것이었다.

“봉사나 기부를 입으로만 하는 사람들이 솔직히 많아요. 입으로만 하는 사람은 그 직책이 끝나면 앉을 자리가 없을 거야. 인정을 받지 못하는데. 내 것을 내어 놓고 먼저 솔선하지 않으면 남들은 인정 안 해. 그걸 어디서 알 수 있느냐.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면 저절로 알 수 있는 거지. 어디 가서 건배제의를 할 때도 ‘져주는 게 이기는 거다’라고 해. 마음을 움직여줘야 되는 거야.”

임 단장은 슬하에 1남 4녀를 두었다. 기부왕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혹독했다. 공부는 대학까지는 시켜 줄 수 있어도 그 이후로는 일절 손 벌리지 못하게 했다.

“‘너희 5남매는 거지가 되어서도 안 보태준다’고 선언을 했어요. 시집장가 갈 때도 벌어서 있으면 가라. 못 가더라도 안 준다는 게 내 철칙이었지. 안사람이 12년을 식물인간으로 있다가 갔는데 아이들이 고생 많았지. 미국 백악관에 근무하는 막내딸이 작년에 왔는데, 춘여고에 장학금을 2백만원 만들어 주고 갔어요.”

그 아버지에 그 딸이다.

버스터미널에서 해방 타이어를 만들던 당시, 근처에서 노점상을 하던 부부의 아들이 서울대학에 붙어놓고도 입학금이 없어 쩔쩔 맬 때 10만원이라는 돈을 선뜻 내어주면서 기부를 시작하게 됐다는 임기수 씨. 받았던 도움을 돌려줄 기회를 잡은 셈이다. 이후 봉사단체인 로터리클럽에 가입해 본격적으로 지역 봉사와 나눔에 앞장서게 된다.

임 단장에게 취미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답은 한마디였다. ‘일.’

“90%가 일밖에 몰라. 물론 비수기 때는 등산도 가고 관광도 가지. 가끔 코드 맞는 사람과 한잔 하는데 그게 좋아요. 난 나한테 좋은 말 하는 것도 안 좋아해. 의견을 많이 듣는데, 잘못한 일을 지적해 주는 이웃이 제일 좋아요. 고쳐서 가야 하니까.”

그의 재산은 1백평 남짓의 타이어 매장과 살림집이 전부다. ‘자식들에게 준 게 없으니 받을 것도 없다’며 고령의 나이에도 일을 놓지 않는다. 그리고 여전히 쓰기에 바쁘다. 지난 2010년에는 죽어서도 기부를 할 목적으로 춘천고와 강원대에 각각 10구좌씩 50년 동안 장학금을 내겠다는 협약식을 맺었다. 매년 개업기념일이 되면 매장에서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한다.

그와 인터뷰가 이어지는 동안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해당 연도, 날짜 등을 정확하게 기억한다는 것. 아직까지 전화번호도 외우고 다닌단다. ‘먹고 살려다 보니 그렇게 됐다’지만 놀라울 정도의 기억력이다. 바지런히 몸을 놀려 일하는 것 외에, 늘 이웃을 위해 봉사하고 기부하면서 얻는 기쁨이 그의 건강에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닐까 하고 나름 추측해 본다. 임 단장의 ‘마음 곳간’은 화수분이다.

“어떤 조찬 모임에 초대 받아 이렇게 말한 적이 있어요. ‘갈비 맨날 먹으면 맛없습니다. 칼국수라도 나눠 먹어야 더 맛있습니다’라고. 나눔이 얼마나 좋은지. 돈 많다고 다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마음에서 우러나야지….”

퍼 올려도 퍼 올려도 나눔의 기쁨으로, 따뜻한 마음으로 가득한 곳간. 올해 사랑의 온도계는 몇 도까지 올라갈지 궁금해진다.

김정운 시민기자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