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노래 속의 민중사 ⑦ - <장렬 이인석 상등병>
‘역사는 빼앗으려는 자와 빼앗기지 않으려는 자의 싸움’이라고 했다. 그래도 우리 역사는 좀 심했다.
특히 우리의 근현대사, 그러니까 우리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겪은 삶은 많이 아팠다.
할아버지는 어떤 아픔을 겪었을까. 아프면 노래를 한다는데 아버지는 어떤 노래를 불렀을까

1. 이인석 상병. 《매일신보》 옥천지국이 1939년 부인 유서분 씨에게 기증했다.

충북 옥천 정거장에 수많은 일장기가 나부낀다. 환희에 찬 황국신민(皇國臣民)들. 이름까지 일본식으로 바꾼 조선인들은 손에 손 일장기를 들고 있다. 천황을 위해 전쟁터로 나가는 이인석 일등병을 환송한다. 이인석은 아내의 등에 업힌 딸에게 말한다. “아빠가 살아오지 못하면 너는 야스쿠니 신사에서 아빠를 찾아라.”

일장기 물결치는 옥천(沃川) 정거장
이인석 일등병 만세’ 소리
하늘도 흔들릴 듯 감격한 마당
정숙히 서있는 이인석 군
고향의 선배들과 가족 친구가 정성껏 보내주는 지극한 00
장부의 철석같은 가슴 속에는 뜨거운 눈물조차 고여 흐른다
이같이 전송받아 전장에 나가 큰 공을 못 세우고 돌아오겠나
일곱 번 죽어서 다시 살망정 나라에 바친 충성이 변할 것인가


이때에 수많은 군중을 헤치고 나온 사람이 있으니 그는 이인석 부인 유(柳) 씨였습니다. 아가, 아버지가 멀리 떠나신다. 안녕히 가시라고 해라.’ ‘오, 정숙(貞淑)이냐, 아버지 얼굴 꼭 봐 두어라. 이것이 이 세상에서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내가 만일 전장에서 돌아오지 못할 때는 너는 엄마를 따라 동경(東京) 구단(九段) 정국신사(靖國神社)에 와서 애비를 찾아라.

윗부분은 노래고 아랫부분은 대사다. 판소리로 치면 위는 소리요, 아래는 ‘아니리’다. 오페라의 아리아와 레치타치보다. 1942년 오케레코드 고유번호 20150으로 발매된 <장렬 이인석(李仁錫) 상등병(上等兵)>이라는 나니와부시(浪花節)다. 일본 판소리라고 할 수 있는, 목젖을 누른 독특한 창법의 일본 전통음악으로 샤미센(三味線)으로 반주한다. 내용이 길어서 여러 장의 음반에 실렸다. 위의 내용은 첫 번째 음반이다. 00으로 처리한 것은 오래된 음원의 좋지 않은 음질과 나니와부시 발성문제로 알 수 없는 부분. 글은 이서구(李書九), 노래는 최팔근(崔八根). 최팔근은 한국어 나니와부시를 창시한 사람이다.

1937년 7월 9일자 동아일보.

“이인석 군은 옥천군 군서면 하동리 이천천(李千天·55) 씨의 장남으로 소학교를 마친 뒤에 옥천농업실수학교(沃川農業實修學校)를 졸업하고 동교 조수로 2년간 재근하다가 지원병으로 입영하였던 터이다. 6월 하순 황군용사의 일원으로서 전투에 참가하여 동월 22일 00의 전선에 몰입분투하다가 마침내 적탄을 받아 장렬한 전사를 하였다는 정보가 6일 현지 00부대로 입전되어 다시 향리 부친 이천천 씨에게 정식 통보되었다. 이 군의 가정에는 양친이 구존, 남·여 동생과 이 군의 처와 세 살 된 딸이 있다.”

이인석은 전사 후 1계급 특진해 상등병이 된다. 죽은 후,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었다가 경성호국신사로 옮겨졌다. 지금 내가 이글을 쓰며 손이 떨리는 것은 일제에 대한 분노보다는 우리의 못남이다.

김진묵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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