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삼지연공항에서 전세기를 타고 505Km를 한 시간 정도 날아 순안공항을 통해 평양에 입성했다. 2003년 9월 24일, 드디어 사진으로만 보던 평양에 들어온 것이다.

삼지연공항에서 비행기를 타러 가는 중에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을 만났다. 김포공항에서 직항로로 왔다는 것인데, 그런 하늘길이 있다는 것이 놀랍기도 하고, 한편 기쁘기도 했다. 그들은 통일교 지원으로 북한을 견학하는 길이란다.

평양(平壤)은 고구려의 수도였고, 고려시대에는 서경(西京)으로 불렸으며, 조선시대에는 평안도 감영 소재지였다. 평양의 면적은 약 1천260㎢, 인구는 약 258만명이다. 대동강을 중심으로 좌측을 본평양(本平壤), 서쪽을 서평양(西平壤), 강 건너 동쪽을 동평양(東平壤)이라 부른다.

우리는 식사 전에 조선혁명박물관과 만수대를 견학했다. 박물관 앞에는 동으로 제작된 김일성동상이 하늘 높이 솟아 있었는데 그 규모가 주민들의 힘든 삶과 대비돼 클로즈업됐다.

평양시내에는 평양학생소년궁전을 비롯해 인민대학습당 등 1950년대에 건설된 건축물들이 들어서 있다. 가장 번화한 거리는 창광거리와 영광거리라고 한다. 말로만 듣던 ‘모란봉’은 평양시내에 있는 자그마한 산으로 높이가 95m 정도 된다고 한다.

인민대학습당 앞에는 김일성광장이 있고 그 주변에 주체사상탑이 있는데, 평양의 상징물로 여겨지고 있다. 주체사상탑은 1982년 4월 세웠는데 봉화가 20m, 탑신이 150m, 화강석 탑이 70계단이고, 기단 둘레가 50m나 된다. 탑은 지하 2층 지상 9층으로 구성돼 있으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9층 전망대로 올라 평양 시내를 온전히 내려다 볼 수 있었다. 평양을 가로 지르는 대동강은 맑고 아름다웠다. 본평양에 상징성 있는 건물들이 늘어서 있고, 저 멀리 동평양과 서평양이 한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진 고려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1985년에 준공된 45층 호텔인데, 호텔 엘리베이터에는 ‘Hyundai’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꼭대기에는 회전 전망식당(스카이라운지)이 있어서 대동강과 평양시내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평양은 고조선의 수도인 왕검성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오후 5시 즈음 우리는 개선역을 지나 30분 쯤 거리에 있는 단군릉에 도착했다. 단군릉은 엄청난 규모의 대리석으로 조성돼 있었다. 능은 289개의 피라미드식 계단(아파트 18층 높이)이 있고, 능 앞과 계단 양편에는 두 손을 모은 단군의 네 아들인 부루·부소·부우·부여 등과 8명의 신하들 조각상이 줄지어 서서 경견함을 연출하고 있고, 능의 네 모서리에는 호랑이 석상들이 둘러싸 엄중하게 지키고 서 있다.

입구에는 단군릉 기적비 설명문을 세워 단군의 조선건국 업적을 칭송하는 914자의 글자를 새겨 놓았다. 단군릉 수축공사가 끝난 1936년에 세웠다고 하며,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민족의 넋을 지키고 단군릉 수축공사에 이바지한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 그들의 애국심을 기르기 위함이라고 적고 있다. 이것으로 보면 단군릉은 1932년 시작해 5년 후인 1936년에 수축공사가 끝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현재의 단군릉은 1994년에 개건된 것이라 한다.

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경비가 카메라의 반입을 제한했다. 내부는 섭씨 14℃, 습도는 50%를 유지한다고 한다. 단군과 그 아내의 부부 유골은 1993년 공명년대측정기로 절대연대를 측정했다고 하는데, 약 5천11년 전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남한 학계에서는 단군의 진위여부나 측정연대에 대해 머리를 젓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단군릉 매점에서 단군관련 화첩은 7유로, 만화는 5권에 5유로, 이야기책은 2유로, 그림은 한 개 1유로씩 판매하고 있었다. 평양 시내 호텔에서도 단군에 대한 책자와 CD까지 비치해 판매하고 있었으며, 주민들과 외국인에게 단군왕검에 대한 홍보를 적극적으로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고구려 장수왕에 의해 평양이 고구려의 수도가 됐는데,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에 의해 고구려가 멸망되지 않았다면,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지도는 어떻게 변했을까?
북한의 늦가을, 불타는 저녁노을을 뒤집어 쓴 ‘단군릉 개건기념비’는 한 폭의 그림같이 잘 어울려 묘한 신비를 더해주고 있었다.

강성곤 (전 한국학중앙연구원 기획조정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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