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시민행동 김주묵 집행위원장

‘박근혜 퇴진’의 촛불로 전국이 뜨겁다. 춘천에서도 전례 없이 많은 시민들이 거리에 나와 촛불을 들었다. 춘천의 집회 현장이라면 언제 어디서든 만날 수 있는 사람 김주묵. 요즘 그의 입술이 많이 부르터 있다. 매주 주말에 촛불집회를 준비하고 진행하면서 몸을 혹사했기 때문이다. 아침 9시부터 밤 12시까지 쉴 틈이 없다보니 컨디션이 엉망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그에게 삶의 이야기와 춘천의 민심을 들어본다.

춘천시민행동 김주묵 집행위원장. 사진=강두환 시민기자

그는 63년 토끼띠지만 학번은 85학번이다. 한림대 사학과에 입학하면서 춘천으로 왔다. 2000년에 복사가게로 시작해 지금은 출판광고업을 하고 있다. 오랫동안 따라다니던 학교 후배와 1994년에 결혼해 현재 아이 셋을 낳아 키우며 알콩달콩 살고 있다. 먼저 근황을 물었다.

지난달 12일 광화문 집회를 다녀오고 나서 전 국민이 엄청난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춘천도 예외일 리가 없다고 여겼다. 그래서 곧바로 몇몇 사람이 집회를 계획하고 실행에 들어갔는데, 예상보다도 더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더라. 이후 매주 춘천시국대회를 준비하며 정말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고 있다.

그는 이번 시국대회뿐 아니라 늘 사회운동에 열심이다.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이러한 삶을 살게 된 계기가 있다면 무엇일까?

사실 나의 이런 삶은 과정이 있다. 누구나 어릴 때 축구공이나 야구글러브 같은 걸 갖고 싶지 않나? 그런데 나는 한 번도 그런 것을 사달라고 졸라보지 못했다. 야근, 잔업 등으로 거의 매일 늦게 퇴근하시는 아버지는 평생을 공장노동자로 살아오셨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가족들은 다 성실하고 근면하게 사는데 왜 힘들게 사는 걸까? 무언가 이 사회는 정의롭지 않구나. 일찍부터 철이 들어버린 것 같다.

그때는 많은 사람들이 그런 환경에서 살았다. 단지 그것만으로 사회운동가의 삶을 살게 되진 않았을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다른 뭔가 특별한 배경이 있을 법도 했다.
초등학교 때 국어와 국사 과목을 좋아했다. 특히 국어는 책에 나오는 시와 수필을 거의 외울 정도로 좋아했다. 고3 시절 형의 영향으로 《전환시대의 논리》, 《민중과 지식인》, 《해방전후사의 인식》 등의 책들을 접하게 됐다. 교과서에 보았던, 내가 좋아한 시와 수필의 저자들이 99% 친일파였다는 사실을 접하고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조국이 일제의 폭압에 수탈당하던 시대에 왜 그들은 하나같이 아름다운 자연과 정취만을 서정적으로 노래하고 있는가? 과연 지식인의 시대적 사명은 무엇인가 생각하곤 했다.

그랬다. 남들보다 이른 시기에 소위 ‘운동권’ 서적을 접했던 것이다. 그러니 대학생이 돼 학생운동을 하게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런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입학한 터라 먼저 군복무를 해결해야 했다.

군대를 다녀오고 복학한 해가 1987년이다. 처음엔 나도 책이나 좀 읽는 그저 그런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그러다가 6월 항쟁이 일어났다. 정의에 대한 갈망과 독서로부터 비롯된 비판의식은 나를 그 흐름 속으로 자연스럽게 빨려 들어가게 했다. 그때부터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고 사는 삶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당시 학생운동을 했어도 졸업을 하고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대개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간다. 그럼에도 이렇게 사회운동을 지속하는 이유가 있을 것 같다. 혹시 멘토 같은 사람이라도 있었을까?

많은 훌륭한 분들을 존경하지만, 어떤 한 사람을 멘토나 롤모델로 삼고 있지는 않다. 뒤돌아가고 싶을 때는 오히려 현장의 후배들을 바라본다. 사회를 바꿔보자고 열악한 환경과 임금에도 묵묵하게 사회단체들에서 일하고 있는 후배들이 아직 많다. 그들을 보면서 힘을 잃지 말아야겠다고 마음을 다잡는다.

시국대회로 넘어가 보자. 이번 시국대회는 그 이전의 집회들과 뚜렷하게 다른 점들이 보인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른바 공공의 선이나 공익을 이루기 위한 집회라는 점에서는 같다. 세월호 이후 명동에서 많은 집회가 있었다. 시민들은 서명은 하지만 집회에 적극 참여하지는 않았다. 참여자는 주로 소수의 대학생이거나 노동단체, 시민단체 회원이었다. 광화문 집회를 바라보며 우리도 사고를 전환하고 방향을 바꿔보자 했고, 이번 집회를 완전히 다르게 기획했다. 새롭게 큰 판을 준비한 것이다. 물론 우리는 판만 깔았을 뿐이다. 시민의 움직임은 역동적이고 자발적이었다.

무엇 때문에 상황이 그렇게 달라졌을까?

우선 자괴감으로 표현되는 시민들의 분노가 그 이전과 비교해 너무나 컸다. 정말 말도 안 되는 헌법유린과 국정농단 사태가 아닌가? 또 적극적인 기획과 홍보가 적중했다고 본다. 시민대화방에서 웹자보를 올리면 온갖 SNS를 통해 퍼날라졌다. 특히 석사동 신시가지를 장소로 선정한 것은 신의 한 수라고 할 만했다. 게다가 김진태 국회의원의 막말이 가히 수훈감이라고 할 만큼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무엇보다 단체회원들의 헌신과 열정을 빠뜨리면 안 될 것이다.

탄핵이 가결됐다.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박근혜는 범법자다. 대통령 자격이 없다. 즉각 퇴진해야 한다. 탄핵은 탄핵일 뿐이다. 직무만 정지될 뿐이지 대통령으로서의 지위가 유지된다. 그러므로 ‘즉각 퇴진’의 구호는 여전히 유효하다. 아마 규모는 조금 줄어들 것이라 생각하지만 퇴진까지 집회는 계속될 것이다. 이 비상한 시기에 국민들은 우리 사회의 적폐를 청산하고 새로운 체제로 나갈 것을 정치권에 요구하고 있다. 변화를 원하는 모든 세력들이 기득권을 내려놓고 마음을 모아야 한다. 그것이 230만 촛불의 기대에 부응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밝게 웃는 그의 모습이 아름답게 보이는 건 비단 나만의 주관이 아닐 듯싶다. 그 어느 해보다 뜨겁게 한 해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는 요즘, 거리에서 촛불을 든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서 희망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강희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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