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에서 탄핵소추 됐다. 예상한 일이지만 생각보다 찬성표가 더 많이 나왔다. 45일 동안 진행된 촛불민심이 반영된 당연한 결과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고개를 못 들 민망하고 창피스러운 일이다. 당사자인 대통령이 물러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런데 이런 창피한 일에 대해 나는 오히려 긍정적인 면을 보려고 한다. 이번 탄핵은 12년 전의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과 비교할 때 매우 질서정연하게 이루어졌다. 국회에서는 아무런 충돌도 없었고, 200만이 몰린 촛불시위에서 시민들은 평화롭고 질서 있는 시위가 어떤 것인지를 온 세계에 보여줬다. 정치권과 시민 모두 한결 성숙한 민주주의를 보여준 것이다. 한국 민주주의가 한동안 쇠퇴하고 있었지만 그 사이 밑바닥에서는 꾸준히 자라나고 있었다는 증거다. 시민의식이 성숙하고 정치제도도 발전하고 있다.

정치권은 언제나 민의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개인의 탐욕과 당리당력으로 지저분한 싸움만 계속해 왔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서는 정치권이 대통령 하야나 탄핵이라는 민의를 비교적 정확하게 반영했다. 물론 그 민의가 워낙 거세어서 정치권이 감히 이를 거역할 수 없었기 때문이기는 했으나, 이 또한 한국 정치의 희망을 보여주는 일이라 생각한다.

현대 민주주의가 성격상 대의민주주의 위주로 갈 수밖에 없기는 하나 그 대의가 국민의 뜻을 진정으로 ‘대의’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므로 중요한 사안들에 대해 국민들이 직접 나서는 참여민주주의, 직접민주주의의 요소가 가미되는 것이 옳다. 이번 사태는 대의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가 조화를 이룬 드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앞으로가 문제다. 대통령은 민의를 받들어 하루 빨리 하야하기 바란다. 본인을 위해서도 그렇고 나라를 위해서도 그렇다. 국민들이 자진사퇴를 요구할 때 깨끗이 잘못을 인정하고 물러났으면 최소한의 명예라도 얻고 연금이라도 챙겼을 텐데, 끝까지 버텨서 최악의 경우를 맞이하는 그 고집 또는 무능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평화로운 권력이양을 위해 더 이상의 소란을 일으키지 말고 자진사퇴하기 바란다. 헌법재판소 판결의 요행은 얻어지지 않을 것이다.

정치인들은 여당이든 야당이든 당리당략에 빠지지 말고 무엇이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한 길인지 잘 판단하기 바란다. 조만간 새 대통령을 뽑아야 할 텐데, 벌써부터 자기에게 유리한 판을 짜기 위해 잔머리 굴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나는 정치학자지만 그런 잔머리 굴리기 또는 유식한 말로 정치공학에는 관심이 없다. 정치인들까지 그렇게 되기를 기대할 수는 없지만, 지긋지긋한 당파싸움을 그만두고 진정 나라를 위한 길이 무엇인지를 성찰해보기 바란다.

개헌도 좋고 정계개편도 좋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이 시점에서 한국 정치의 발전과 민생안정에 어떤 기여를 할 것인지를 먼저 생각해주기 바란다. 그것을 마다하고 권력투쟁에만 몰두하면 다시 국민의 엄정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김영명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