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주어지는 것인가? 아니면 싸워서 획득해야 하는 것인가? 법에 복종하지 않는 행동도 이성적인 행동일 수 있을까? 여론이 정권을 이끌 수 있는가? 이 어려운 질문들은 프랑스 대입 자격시험 ‘바칼로레아’의 상징인 철학시험 문제의 일부다. 프랑스 교육은 사실 청소년들에게 그리 많은 양의 공부를 시키지 않는다고 한다. 내 지인도 중학교 때 프랑스에 유학 가서 ‘자기가 이렇게 놀려고 프랑스에 왔나?’하는 자괴감에 한동안 적응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나라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고, 세계에서 두 번째로 ‘수학의 노벨상’인 ‘필즈상’을 많이 배출한 나라라고 한다. 비결은 알려진 것처럼 프랑스 교육이 추구하는,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고 철학시험은 그 핵심이다.

알고 있듯이 왜곡된 우리나라 교육현실에서 학생들이 추구하는 것은 바로 ‘테크닉’이다. 전문가들이 수능만점자들을 만나서 인터뷰한 결과, 그 비결은 많은 문제를 푸는 것이었다. 빠른 시간에 실수 없이 문제를 풀고, 요령을 익혀서라도 정답을 맞히는 일종의 ‘테크닉’을 익혀야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오랫동안 청소년을 만나면서 느끼는 안타까움이 바로 이 생각하는 힘이다. 요즘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이다. 카톡이나 페메(페이스북 메신저)로는 쉴 새 없이 떠드는 아이들이 어떤 문제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말해보라고 하면 다들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고자 춘천시 청소년방과후아카데미에서 야심차게 토론수업을 개설했는데, 이 과목이 있는 날이면 아이들의 출석률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아이들은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정말로 힘들어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 숨어 있는 더욱 큰 문제는 내가 아닌 우리의 문제에 대해 고민해본 경험도, 그럴 여력도 없다는 것이다.

‘권력은 부패한다.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 그래서 우리는 오랫동안 권력을 견제·감시하기 위한 제도와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고, 작금의 대한민국은 그런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기에 국민들은 더욱 분노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상황은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들에게는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 참교육의 시간이 되고 있다. 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최순실 국정논단 사건과 박근혜 게이트를 통해 아이들도 분노했고, 민주주의 제도에 관심을 갖게 됐으며, 무엇보다도 나의 문제가 아닌 국가의 문제에 관해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일부 매우 보수적인(?) 분들은 아이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선동당해서 떠들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전혀 아니다. 우리 아이들도 현 상황에 대해 각종 SNS를 통해 여러 가지 자료를 공유하고 토론을 하며 자신들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자녀를 키우고 있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요즘 아이들은 누구한테 쉽게 선동당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 시간이 너무 감사하고 소중하다. 그동안 민주시민교육을 하면서 느낀 청소년들의 정치의식은 어른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국회의원은 그저 세금만 축내는 한심한 인간들이고, 정치란 나쁜 것이며, 그래서 관심을 갖는 것은 인생의 낭비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누구의 책임인가는 말할 필요도 없다.

요즘 아이들이 경로의식이 너무 없다고 비판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일 년에 겨우 몇 번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만나는 아이들에게 경로의식을 바랄 수 있는가? 요즘 아이들이 너무 고생을 모르고 자라서 철이 없다고 비판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부모는 자기 자식이 고생하는 것을 절대 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식을 위해서라면 온갖 편법까지 동원한다. 자녀의 문제에서 만큼은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상당수 부모들이 사실 최순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 청소년들이 말한다. “어른들이 겉으로는 우리가 민주시민으로 건강하게 성장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더러운 정치에 관심을 갖지 말라고 한다. 그런데 20살이 되면 갑자기 성숙해지면서 민주시민으로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할 자질이 생기나요?” 어린 아이가 뛰기 위해서는 먼저 기고 걷는 단계를 거쳐야 하는 것처럼 성숙한 민주시민으로서, 그리고 주권자로서 권력을 감시·견제하기 위해서는 청소년기부터 우리의 문제와 나라의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더욱 발전하고 앞으로도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지켜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이원영 (춘천시청소년수련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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