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은 지난 주 뉴욕 회견에서 “대한민국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제 한 몸 불살라서라도 노력할 용의가 있다”고 밝혀 사실상 대권도전을 선언했다. 유엔총장 10년, 국제적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보편가치에 충실한 정공법 대신 여기저기 눈치를 보다 ‘우려한다’는 어미로 끝나는 성명을 자주 발표해 ‘우려총장’이라는 소리를 듣던 그로서는 대단한 변신이었다. 이후 그는 링컨의 정치적 고향인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로 출장을 갔다. 반기문은 거기서도 통합의 리더십을 강조했다. 노예해방과 미국 연방의 통합에 힘쓴 링컨의 상징적 위업을 정치신인인 자신의 이미지 강화로 환치시키려는 계산이었다.

반기문은 대통령감인가? 그의 넘치는 의욕과 달리 자질과 역량 모두 양이 차지 않는다. 유엔 사무총장직 수행과 업적만 봐도 그 믿음은 확고해진다. 반기문의 업적은 기후변화 의제 정도에 그친다. 대규모 난민사태를 낳은 시리아내전 같은 국제적 분쟁 해결에는 전혀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그저 강대국의 눈에 거슬리지 않을 정도의 현상유지에 그쳤다. 다만 그의 실패가 드러나지 않는 것은 유엔 지배주주인 미국과 오바마 정부가 임기 8년 내내 전쟁하다 끝난 부시와 달리 국제분쟁에 덜 개입한데 따른 효과 때문이다.

반기문의 업적은 전임 코피 아난과 비교하면 더 초라해진다. 코피 아난은 부시가 이라크를 침공하자 미국의 일방주의에 반기를 들었다.

미국의 군사행동을 유엔헌장을 위반한 불법으로 규정하고, 이라크 수감자 고문 같은 비인도적 처사를 국제사회에 고발했다. 한때는 유엔 전범재판소 소속 재판관들을 사담 후세인에 대한 공판과정에 파견하지 않겠다며 부시에 맞서기도 했다. 미운털이 박힌 그는 “유엔(코피 아난)이 1백억 달러를 착복한 후세인을 도왔다”는 미국정부의 모함을 받아 미 의회조사단 등으로부터 곤욕을 치러야 했다.

반면, 반기문의 유엔은 친미성향의 안전운행이었다. 그는 시리아 내전에 개입한 미국과 러시아 등에 맞서 독자적인 유엔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그 결과 난민 발생 최소화 등의 기회를 놓쳤다. 그의 잘못된 발언으로 유엔 지원군이 추방당하는 일도 벌어졌다. 그는 알제리 틴두프 지역의 난민촌을 방문한 자리에서 “모로코가 서사하라 지역을 점령하고 있다”고 외교적 실언을 해 모로코 정부로부터 자신이 파견한 유엔부대가 추방당하는 일을 자초해야 했다.

그의 유엔은 ‘아동인권연례보고서’ 작성과정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중심의 아랍연합군을 ‘블랙 리스트’에서 고의로 빼 국제인권 단체들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다.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도 낙제점이었다.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거나, 고립·압박정책으로 일관한 보수정권에 무려 9년이나 끌려다녔다. 이는 북핵과 인권문제를 별개로 보고, 인도주의적 지원을 한 코피 아난의 정책보다도 훨씬 뒤진 것이었다. 오죽하면 <이코노미스트>가 “역대 사무총장들 가운데 가장 아둔하고 최악”이라거나 “행정과 통치 모두 실패한 총장”이라고 평가했겠는가.

지금 반기문에게 필요한 것은 숟가락 들고 누구 꽃가마를 탈 것인가와 같은 잔머리가 아니라, 왜 수백만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였는지를 성찰하는 일이다.

고광헌 (시인·한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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