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섬

                                                    이은무


겨울을 춘천에서 내린다
하얀 섬으로 가는 길을 묻는다
누구나 모른단다
근화동 뱃터에서
단 5분이면, 그 섬으로 건너가는
배가 있다는 얘길 듣고 왔지만
아무도 아는 이가 없다
하긴 그럴 수밖에
그런 섬은 거기 없으니까
하얀 거짓말이었으니까
 

섬이란 단어가 가지는 의미는 태생적으로 서술자의 시점에 따라 다중의 의미로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섬이라는 단어의 어의가, 뭍을 떠나 난파한 사람의 처지에서 보면 희망을 꿈꾸게 하는 거짓말의 대체 명사일 수도 있다. 위약효과와도 같은 하얀 거짓말일 테지만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의 섬은 분명 어딘가에 있을 수도 있는 안도이지만 절대 나타나지 않을 것일 수도 있다. 우리들의 이어도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시인이 딛고 있는 뭍은 어디인가? 춘천이라고 진술하고 있다. “겨울을 춘천에서 내린다.” 하얀 섬은 근화동 뱃터에서 출발하면 5분 거리에 있다고도 한다. 그렇다면 시인은 아직 뭍이었을 거라 굳게 믿고 싶었을, 근화동 뱃터 그 이전의 춘천에서 이미 난파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 혼선의 지점에서 시인은 이미 이 모든 사실을 소상히 간파하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춘천에서의 살아 있는 동안을 놓아버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저 껄껄 웃어넘기고 싶었을 것이다.

가끔, 희망은 우리에게 그런 것이다. 춘천에서 섬을 기다리며 고립의 겨울 한 철을 지내야 한다는 것. 겨울 안개가 많은 춘천에선 더욱 그럴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새빨간 거짓말들이 참말을 무참히 능멸하는 시절이다. 보이지 않는 섬의 담론에 분노하는 계절이다. 누가, 거짓말이라도 좋으니 희망처럼 보이는 것을 좀 이야기해 달라. 하얀 섬 같은 이야기를. 노 시인은, 이런 날을 먼저 건너다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유기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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