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희 강원도교육감

전교조 출신 최초의 교육감인 민병희 교육감. 교육위원으로 8년, 그리고 교육감으로 6년 반의 세월 동안 때로는 전교조 출신이라고 공격도 많이 받았다. 그때마다 민 교육감은 오히려 전교조 경력이 인생에서 가장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경력이라고 말한다. 새해 강원교육의 방향을 듣기 위해 교육청을 찾았다. 집무실에서 손수 접대하는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해도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 교과서 문제, 누리과정 문제 등 갈등요소도 많았는데,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강원교육의 성과로 무엇을 꼽을 수 있는지,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지?

도민들의 관심과 성원으로 지난해 강원교육은 역동의 한 해를 보냈다. 초등학교 행복성장평가제, 중학교 자유학년제, 고교평준화, 에듀버스 등 핵심정책들이 자리를 잡았고, 마을교육공동체, 강원교육희망재단도 첫 발을 떼었다. 몇 년째 강원교육을 힘들게 했던 누리과정 문제도 정부가 책임을 인정해 일단락 지었다. 이 성과를 바탕으로 올해는 누리과정 예산 추가확보 등 근본적 해결에 적극 나서겠다. 물론 한 해를 돌아보면 아쉬운 점도 없지 않다. 무던히 애썼지만 올해도 도내에서 8개의 학교가 문을 닫아야 했고, 학교 현장에서는 변화의 속도가 더디다는 비판과 너무 빨리 가서 힘들다는 질책도 있었다.

새해 강원교육은 어떤 점을 중점에 두고 정책을 펼치나?

새해의 핵심 방향은 ‘튼튼한 기초학력과 토론이 있는 교실’이다. 지금까지 교원업무정상화와 학교 민주주의 등 양질의 가르침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왔다. 이제 이것을 수업과 평가 혁신을 통해 양질의 배움으로 연결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우리 사회에는 가정형편에 따라 과잉학습과 과소학습의 격차가 심각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초등학교가 한글교육과 기초학력을 꼼꼼히 챙겨주는 정책을 추진하겠다. 더불어 중학교는 자유학년제의 수업·평가 혁신 분위기가 중학교 전 학년으로 스며들도록 하겠다. 고등학교에서는 야자와 보충수업의 강제성을 줄이고 학생들의 진로목표에 따른 학습동아리 활동을 강화하고자 한다.

한시적이긴 하지만 국회에서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면서 한 시름 덜었다. 내년 강원도 누리과정 예산으로 617억여원을 편성했는데, 누리과정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은?

보육만큼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당연히 누리과정 예산은 국고로 전액 지원해야 한다. 더불어 이번 특별법이 3년 한시로 만들어졌는데, 다음 정권에서는 유보통합을 비롯해 관련 법령도 깔끔하게 정리해주길 바란다.

국정 교과서가 결국 1년 유예됐다.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것인가?

교육부의 현재 방침은 국검정혼용이다. 아마 이 혼란을 기획한 사람들은 어떻게든 친일·독재 옹호사관이 시민권을 획득하도록 만들고 싶은 마음일 거다. 다양한 사관이 검인정체계로 들어와서 경쟁하는 건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전문 역사학자가 서술해야 하고, 헌법을 부정하는 서술은 막아야 한다. 그 원칙에 비추어볼 때 지금 국정교과서는 즉각 폐기되는 것이 맞다. 교육부가 꼼수를 부려 국검정혼용으로 간다고 해도 학교들이 수용하지 않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그리고 작금의 혼란에 대해 교육부장관은 명백하게 책임을 지고, 국회는 국정화방지법을 제정해 앞으로의 혼란도 미리 막아야 한다고 본다. 시도교육감협의회 차원에서 함께 대응하겠다.

누리과정으로 도의회와도 갈등이 많았다. 이번에는 고교 무상급식 확대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결국 예산이 삭감됐는데 향후 대책은?

고교 무상급식은 언젠가는 실행해야 할 정책이다. 도민의 동의도 높고, 예산부담도 크지 않다. 다만 도와 기초자치단체가 함께 하는 사업이다 보니, 의견조율이 필요하다. 일단 희망하는 지자체부터라도 먼저 시작해보면 좋겠다. 도의회도 도민복지가 늘어나는 정책에 대해서는 도와주면 좋겠다.

교육공무직 관련해서도 갈등이 많다. 방학 중 임금문제도 있고, 유치원 방과후 교사는 새해부터 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교육공무직도 학교의 중요한 구성원인데,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없는 것인가?

그분들의 주장에 반대하지 않는다. 특히 교직원이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는 문제는 교육의 질 향상에 있어서도 중요한 문제다. 다만 예산은 한정되어 있고, 현실적인 인건비 부담 문제가 있으므로 협상을 통해 단계적으로 상황을 개선시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일찍이 몇몇 직종의 무기계약 전환에 있어서 강원도가 전국에서 가장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 다른 부분에서도 최대한 노력하겠다. 더불어 정부도 이 문제에 손 놓고 있지 말고 ‘교육공무직법’을 제정해 이들의 처우를 개선하는데 앞장 서주면 좋겠다.

국가적 차원의 교육정책 혁신이 절실하다. 특히 국가교육위원회 설치를 제안하셨는데, 그 배경과 취지에 대해 설명해 달라.

우리 교육에 여러 문제가 있지만, 그 중 하나가 정권 입맛에 따라 바뀌는 교육정책이다. 수시로 바뀌는 교육과정과 각종 즉흥적인 정책들로 인해 학교가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강원도는 작은 학교 통폐합 문제까지 겹쳐서 도내 학교에서는 민폐의 주범이 교육부라는 말까지 나온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교육에 정치개입을 차단하고, 10년 이상의 장기적 안목으로 교육정책을 실행하는 국가교육위원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위원회가 생긴다면 시도교육청은 그 정책방향을 존중하면서 지역특성을 살려 집행하는 역할을 하면 된다. 그것이 진정한 교육자치이자 지방자치다.

온마을학교, 작은학교 희망재단, 공립형 대안학교 등 농촌지역이나 취약계층 등의 교육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돋보인다. 큰 틀에서 강원교육의 비전에 대해 듣고 싶다.

지난 수십 년간 우리 교육의 목표는 그동안 ‘서울에 있는 좋은 대학 보내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연적으로 공부 잘 하는 상위권 애들에게 초점을 두었다. 하지만 5년 뒤에는 고등학교 졸업생이 대학입학 정원보다 적어진다. 저출산 고령화시대를 대비하는 우리의 교육목표는 ‘모든 아이들을 훌륭한 어른으로 키우기’가 돼야 한다. 그러려면 당연히 소외되고 천천히 배우는 아이들에게 관심을 돌려야 한다. 더불어 아이들은 자기 주도적으로 배워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는 지식을 외우고 객관식 문제를 잘 푸는 능력으로는 한계가 있다. 이를 위해 토론과 질문이 있는 수업, 성장을 이끌어내는 평가로 학교가 바뀌어야 한다. 또한, 강원도가 살려면 작은 학교를 지키고 지역을 사랑하는 인재를 키워야 한다. 일본에서는 이미 학교소멸이 지방소멸로 이어진다는 문제의식이 팽배해서, 학생이 없어도 학교를 폐교하지 않고 일시 휴교만 하는 사례가 생기고 있다. 마을교육공동체는 학생들이 지역에 애정을 느끼고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는 인재가 되도록 키우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

촛불로 올 한 해의 마지막을 뜨겁게 마무리하게 됐다. 어떻게 보면 이번 국정농단 사태가 우리나라 전체적으로 보면 전화위복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더 좋은 사회가 되기 위해 새해에 우선적으로 이루어야 할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격차해소와 민생복지라고 본다. 격차가 심한 사회에서는 학교도 건강할 수 없다. 학교폭력이나 과도한 입시경쟁으로 인한 교육파행도 따지고 보면 우리 사회의 심각한 격차와 빈약한 복지가 그 토양이다. 우리나라는 기형적으로 대학 진학률이 높다. 또한 대학에 보내기 위한 사교육비나 등록금 부담이 노후빈곤의 주범이다. 공부에 적성이 있는 아이들 빼고는 ‘대학에 굳이 갈 필요 없는’ 사회가 좋은 사회다. 그러려면 고졸취업이 늘어나야 하는데, 여기에는 또다시 대기업과 중소기업, 대졸과 고졸의 임금격차라는 문제가 숨어 있다. 최저임금 인상이나 비정규직 임금인상, 사회안전망 강화, 고졸 좋은 일자리 확대 등이 경제·노동 정책 같지만, 실은 학교를 정상화시키는 가장 좋은 교육정책이다. 정치가 이런 의제를 잘 해결해주면, 교육계는 그 토양 위에서 더 좋은 교육을 실행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과거에는 춘성군이었던 북산면 내평리가 고향인 민 교육감은 오롯이 춘천사람이다. 소양댐 건설로 마을이 수몰되면서 5학년 때 춘천시내로 나왔다. 광장에서 촛불을 든 청소년들이 대견스러웠다는 민 교육감. 그는 ‘같은 물이라도 뱀이 마시면 독이 되고, 소가 마시면 우유가 된다(蛇飮水成毒 牛飮水成乳)’는 법구경의 구절을 인용하며, 교육의 목적은 계층상승이 아니라 ‘공동체의 유지’에 있다고 강조했다.

전흥우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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