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공신의 경남 남해 미조항 가묘 터…사유지 택지조성 여파로
남해 미조항 인근의 사유지에 있는 충장공 한백록 장군 가묘 유적을 기념사업회 회원들이 돌아보고 있다.


겨울비 속에 마을의 노인들의 안내를 받으며 찾아간 충장공 한백록 장군의 가묘가 있었던 장군의 유일한 유허지는 산자락 땅이 사유지라서 택지조성으로 절반 이상이 축대의 돌담에 덮여있었다. 10년쯤 전에 이미 탐방한 적이 있던 청주한씨 문중의 한희민 총무도 기억을 온전히 떠올릴 수 없을 정도로 주변지형이 변해버리고 만 것이다. 산자락 아래까지 들어온 바다는 임진왜란이 발발한 그해 7월에 충장공이 하루 종일 쳐부순 왜적들의 시신으로 가득 차 있던 바로 그 바다였다.

미조항 마을에는 무민사가 있다. ‘무민’은 고려말 최영 장군의 시호로, 조선 초기부터 해신을 겸해 장군의 영정을 모시던 사당이다. 남해군에만 이런 사당이 일곱 곳이나 된다. 미조항의 ‘무민사 현충회’ 노인들은 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충장공 무덤의 전설을 알고 있었고, 그 무덤이 있는 장소나 생김새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전설은 《남해군지》에도 실려 있지만 정작 그 무덤 유허지에서는 아무런 표지나 보존노력을 찾아볼 수 없었다.

남해군 북쪽은 노량해협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해전이 치러졌던 곳이다. 충무공은 도주하는 왜군을 새벽까지 뒤쫓다가 남해군 서편 관음포에서 순국했다. 충남 아산으로 이장된 뒤에도 그 가묘 자리에는 이미 당시에 유허비가 세워졌고, 지금은 ‘이락사’라는 사당으로 남아 있다. 노량해전의 바다를 조망해볼 수 있도록 근처에는 첨망대라는 누각도 세워져 있다. 아무리 충무공이라지만 충장공 유허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별이 심해 보였다.

400여년이나 전해오던 충장공의 유적지가 개발의 여파로 사라질 위기를 맞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곳 주민들의 생각이다. 미조항 마을 사람들의 생각은 열려져 있음을 확인했다. 충장공의 고향인 춘천시민들이 생각을 모으고 보태야 할 때다.

춘천시민들이 지닌 역사문화 의식이 저 먼 남쪽바다 끝까지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지 가늠해볼 기회가 온 것이다.

정재경(충장공한백록기념사업회 회원)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