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샘솟는 마을이 있다. 비를 내려 사람을 살리는 마을이 있다. 음양의 조화를 이뤄 풍요를 만드는 마을이 있다. 산으로 가면 여신이 모두를 보호해 주는 마을이 있다. 바로 물로리 한천마을이다. 물로리 한천마을의 사람들은 생각의 폭이 크다. 물로리 사람들의 생각 폭이 왜 큰지 이야기를 따라가면 알 수 있다.

한천자 무덤(2010)

한천마을은 한천자무덤의 유래에서 비롯됐다. 한천자무덤 이야기의 배경은 엄청 크다. 내평리에 살던 머슴이 물로리 가리산 자락에 무덤을 써 그 후손이 중국의 천자가 됐다. 신분상승의 폭이 보통이 아니다. 이야기 속에는 많은 상징과 비유가 있다. 신앙으로까지 발전한 풍수지리설을 이용해 민중의 꿈을 담아냈다. 삶은 달걀이 닭이 돼서 울어 명당임을 알린 곳이다. 그러고 보면 닭띠해인 올해 정유년(丁酉年)과도 맥이 통한다.

한천자무덤의 이야기는 춘천시 전체를 아우르고 있다. 홍천 팔봉산으로부터 남산면의 구만리와 덕만이고개를 지나 삼천리(삼천동)를 거쳐 신북읍의 샘밭 들을 지나서 갈 수 있는 곳이다. 중국천자가 조상의 고향을 찾으려 하자 우리 국적을 가진 신하가 그 번거로움을 피하고 조선의 백성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멀고 험한 길의 이야기를 엮었다. 지명을 활용해 지혜를 짜냈다. 고향사람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깊이 있게 전해진다.

2012년 기우제 
2012년 기우제

한천자무덤은 벌초를 하면 산삼을 캐게 해준다. 그 때문에 일 년 열두 달 무덤은 언제나 단정하게 이발을 하고 있다. 초하루와 보름에는 은주사 스님이 와서 제를 지낸다. 고시공부를 하는 사람을 비롯해서 뭔가 시험이나 승진 등 소원이 있는 사람은 이곳에서 제물을 차리고 기원을 한다. 정말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는지는 모르지만, 아주 오랜 세월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면 빈말은 아닐 것이다.

춘천에는 가뭄이 들면 많은 곳에서 기우제를 지낸다. 삼한골, 지내리 소양강, 용화산, 고산 등이 기우제 터다. 그 중에서 신연강 백로주에는 제1 기우단이 있었고, 대룡산정에는 제2 기우단이 있었다. 제2 기우단에서 비를 빌어도 비가 내리지 않으면 마지막으로 한천자무덤인 제3 기우단에서 비를 빌었다. 이곳에서 비를 빌면 꼭 내린다고 한다. 2012년 대가뭄 때도 이곳에서 비를 빌고 이틀 후에 비가 내렸다

물로2리 3반의 여서낭

물로리는 가리산이 품고 있는 마을이다. 가리산의 신령이 여신이라서 부끄러움을 많이 탄다. 그 때문에 봉우리가 셋인데 항상 하나를 가려 두 봉우리만 보인다. 가리산의 유래가 참 재밌다. 사람들은 예부터 음양의 개념으로 사물을 이해하려고 한 경우가 많다. 그 때문에 가리산에도 남신과 여신의 대결설화가 있다. 예나 지금이나 남녀가 대결을 하면 여성의 꾀에 남자가 넘어가는가 보다. 가리산의 남신도 결혼을 미끼로 던진 여신의 꾀에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여신은 가리산에 들어온 모든 생물을 보듬어 품에 안아 보호해주며, 풍요를 안겨준다고 한다.

물로2리 3반의 남근석

물로리에는 각 마을마다 서낭당이 있다. 그 중 2리 3반의 서낭당이 호기심을 불러낸다. 서낭신은 원래 여신과 남신이 있었다. 그런데 남신이 있는 남서낭은 언제부터인가 흔적만 남아 있어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여서낭만 모시는데, 3월 3일과 9월 9일이 동제일이다. 신이 영험한 탓에 병이 있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빌고 병이 나았다는 이야기가 많다. 재미있는 사연은 바로 이 여서낭 맞은편에 커다란 남근석이 있다는 사실이다. 1997년 쯤 서울에 살던 아무개가 현몽을 해서 “산에 가면 누가 계시다”며 위치까지 가리켜줘 파봤더니 남근석이 나왔다고 했다. 남근석 안에는 여근석도 있고, 그 옆에는 아들 돌도 있고, 딸 돌도 있다.

물로리는 늙지 않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다. 한자로 말 물(勿)에 늙을 로(老)자를 쓴다. 원래는 없을 무(無)자에 늙을 로(老)자를 썼다. 무로곡(無老谷)과 무로천(無老川)이 있었는데, 물로리(勿老里)로 바뀌었다. 왜 이 마을사람들이 마을이름을 그렇게 했는지 짐작이 간다. 비록 작은 마을이지만 춘천 전체를 품에 안고 있다. 비를 내려 풍요를 주고, 가슴에 아픔을 품어 위로해 주고, 누구든 소원을 들어주는 마을이다. 이 어찌 늙음이 올 수 있겠는가? 이는 곧 춘천사람들의 마음이리라.

이학주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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