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7일 2017년 수학능력평가 결과가 통지됐다. 불수능이라 불린 올해의 수능에서도 만점자가 나왔다. 한 해 동안 고생한 수험생들과 부모들의 초조함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수능 결과가 발표되면 언론에서는 만점자 위주로 기사가 양산된다. ‘누가 일등을 했네.’ ‘누가 만점을 받았네.’ 우리 사회를 일등만 기억하는 사회라고 조소하는 소리가 많다.

설악산에 자생하는 두루미꽃 

식물에도 일등과 비슷한 의미를 가진 식물들이 있다.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나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꽃 등. 이런 식물들을 깃대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깃대종이란 그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꼭 보호받아야 할 종을 이르는 말이다. 설악산의 깃대종은 눈잣나무다. 설악산에서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하고 있지는 않지만, 꼭 보호돼야할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설악산에서 많이 보이는 야생화 중에는 두루미꽃이 있다. 두루미 꽃은 큰 두루미 꽃과 두루미꽃 두 가지로 나뉘는데, 높은 산 숲속의 바람 많은 지대에 주로 자생한다. 꽃이라고 부르기엔 어딘지 부족해보이지만 가만히 보면 작고 앙증맞은 20여개의 꽃을 피운다. 이 꽃을 처음 본 것은 설악산 대청봉 가는 길, 소청에서 중청까지의 구간에서였다. 처음 보는 풀잎이 유난스럽게 윤기를 내고 있어 그 이름과 습성이 궁금해 사진을 담고 돌아오자마자 도감을 찾기 시작했다. 대청을 오르는 길에 지천으로 널린 꽃(풀)인데, 대청봉이나 설악산에 관한 글 어디에도 이 꽃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었다.

두루미꽃은 왜 주목받지 못했을까? 대청봉에 올랐던 많은 이들이 써놓은 야생화 관련 글 어디에도 없는 꽃.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많이 퍼져있는 꽃(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그렇다. 일등만 기억하는 것이다. 화려함만 기억하려 한다. 많은 이들이 관심 있는 일만 기록하려 한다. 올해도 그렇고, 내년에도 그렇고, 앞으로도 쭉 대청봉의 키 작은 나무 아래를 파랗게 덮고 있는 야생화는 두루미꽃일 것이다.

화려하지 않아도 누구의 관심을 받지 않아도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는 두루미꽃. 두루미꽃처럼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지만 세상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모든 것들은 찬사를 받아 마땅하다. 일등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소중한 역할이 있고 잘하는 일이 있게 마련이다. 일등이 아니더라도 찬사를 아낄 필요가 없다. 그게 당신을 위한 찬사일 수도, 세상의 말 못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찬사일 수도,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아름다운 모습을 감추지 않는 모든 꽃들에 대한 찬사일 수도 있다. 아무 역할이 없는 듯 보이지만 시원하게 갈증을 씻어주는 찔레나무에 대한 찬사일 수도 있다.

오동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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