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존중을 잃지 않으면서 자신의 한계로부터 배워라. - 마샬 로젠버그

우리는 교육을 통해 사회에서 말하는 권위 있는 사람들이 규정한 ‘실수’라는 것을 했을 때 자기 자신을 폭력적인 방법으로 교육해서 그 실수를 바로 잡도록 훈련받았다. 사람들마다 내면의 교육자가 나를 야단치는 방법들은 조금씩 다르지만 그 결과로 우리는 죄책감, 수치심, 우울감을 느끼며 다시는 그 행동을 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이 방법은 나 자신에 대한 폭력적인 방법이지만 가장 익숙하고, 나 자신이나 특히 자녀들의 행동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우리가 아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그러나 우리는 매번 실수를 하고 그때마다 내면의 교육자는 사회의 권위자라는 사람들이 만들어준 ‘옳다, 그르다’에 맞춰 나를 판단하고 그 행동을 고치라고 한다. 이런 자책에는 실수를 한 사람은 고통을 받아야 한다는 폭력적인 메시지가 숨겨져 있다. 이런 과정을 바탕으로 죄책감과 수치심을 느껴 어떤 행동을 바꾼다면, 바꾸는 그 과정들은 자유롭지도 즐겁지도 않다. 또한 심리적으로 우울이라는 값비싼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우리는 지나간 나의 행동들에 실수라는 이름을 붙여 크고 작은 후회를 한다. 그러나 비폭력 대화에서는 실수에 대한 자기공감을 하는 과정으로 ‘비폭력대화로 애도하기’라고 부른다. 지금 이 단어를 쓰면서 나도 모르게 미소가 나온다. 애도과정이 나에게 즐거웠던가 보다. 아프기도 하지만 그 아픔 뒤에 나에 대한 비난이 아닌 나에 대한 이해를 통해 나와 화해하고 수용해 나 자신을 드디어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게 돼서다.

내가 비폭력대화를 배우고 가장 먼저 애도를 했던 것은 살면서 나 자신의 선택에 가장 많은 비난을 했던 대학 전공 선택에 대한 나의 행동이었다. 원래 가고 싶었던 과는 신문방송학과 였는데 담임선생님이 그 과에는 성적이 안 되니 붙을 수 있는 다른 과를 추천해 주셨다.

원서 쓰는 당일 날 새벽에 평소 꿈을 잘 안 꾸는 내가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내가 신방과에 붙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꿈을 무시하고 대학입시에 떨어질까 두려운 마음에 붙을 수 있는 관심 밖의 과를 지원했다. 그 결과 그 해 신방과가 내 성적으로도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예상 밖의 결과가 나왔고, 그냥 붙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썼던 그 과에는 떨어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두고두고 ‘나는 내가 원하는 것도 선택하지 못하는 용기도 없는 겁쟁이야. 이런 바보’라고 나 자신을 자책했다.

비폭력대화로 애도를 한다면 그때 그런 선택을 한 내 욕구는 무엇이었을까? 그때 당시 가정형편상 나는 안전하게 합격해 엄마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다. 우리가 실수라고 부르는 모든 행동에도 우리의 아름다운 욕구가 있다. 그렇다면 내가 자책했던 이유는 그 행동에서 채워지지 않았던 나의 중요한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그 욕구를 찾아보니 자기존재에 대한 믿음이었다. 이렇게 욕구를 찾은 후 그 욕구에 충분히 머물러 본다. 그리고 다음에 이러한 상황이 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구체적인 긍정적 행동을 나에게 부탁한다. ‘승옥아, 선택을 할 때 시간을 들여서 너의 내면의 소리를 들어보고 글로 정리해 보자. 그 일을 선택했을 때 나의 느낌, 중요한 욕구는 무엇인지.’

이렇게 애도과정을 해보니 내가 바보 같아서 그런 선택을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고 그때 당시 가장 슬프고 답답했을 나 자신에 대해 연민이 생겼다. 또한 앞으로 선택에 구체적 행동도 명확하게 되었다. 누군가 자책을 할 때 애도로 바꾼다면 우울 대신 나를 알아가는 기쁜 과정이 되지 않을까….

이승옥 (비폭력대화 전문강사 과정)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