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인들, 독일 내 한인 촛불집회 응원

박근혜정부의 국정농단으로 국내외를 떠들썩하게 했던 지난해 12월 10일. 한 달 여 동안 독일 주요 도시의 광장에서 토요일마다 열리던 ‘박근혜 퇴진을 위한 한인 촛불집회’에 잠정 ‘마지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하루 전인 9일에 가결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그 이유였다.

세월호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단원고 실종자 학부모의 영상을 지켜보는 노란우산들.
그 뒤 대형 크리스마스트리로 반짝이는 거리는 부모와 함께 선물을 사러 나온 독일 아이들로 북적거렸다. ⓒEunbi Jeong

탄핵 가결은 시작일 뿐 진위를 밝히고 부역자들을 처벌할 때까지 경계를 늦추지 않고 압박하고자 했지만, 나라 밖 집회는 국내와 다른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실내 시국토론회는 매주 이어가겠지만,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설 수는 없게 됐다. 이런 독일의 결정에 대해 한인들은 크게 불만을 표시하진 않았다. 먼 나라에서 온 외국인들이 독일 영토 내에서 자국의 문제를 가지고 집회를 열겠다고 하자, 독일 당국은 광장과 거리를 내어주고 만일의 사태에서 집회 참석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경찰까지 배치해줬다. 아직 한인들의 가슴은 후련하지 않지만, 탄핵 가결을 이유로 집회를 불허한 독일을 야속하게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동포들의 촛불집회가 독일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대통령 퇴진과 한국의 민주주의 회복을 목표로 나라 밖 시국선언 및 집회만 25개국 69개 도시에서 등록됐다(2016.11.24 기준). 독일을 비롯해 프랑스, 핀란드, 스웨덴, 오스트리아 등 유럽과 미국, 캐나다 등 미주, 그리고 일본, 중국, 베트남, 인도,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국가들도 이름을 올렸다. 또한 오세아니아의 호주와 뉴질랜드뿐 아니라 터키, 케냐, 브라질까지 등록이 됐으니 정말 전 대륙에서 촛불을 밝힌 셈이다. 이 중에는 국가별 집회에 대한 법률적 문제로 광장이 아닌 회관 등에서 이루어진 시국선언도 있었다. 하지만 질서 있는 예술집회로 세계를 놀라게 한 한국의 시민의식에 걸맞게 각국의 법과 규칙을 준수하며 목소리를 낸 모든 행동들은 커다란 의미가 있었다. 박근혜정부를 향한 독일 내 촛불집회는 잠정적으로 막을 내렸지만, 이 촛불들은 언제든 다시 타오를 준비가 되어 있다.

베를린 집회. 한국의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거리행진이 베를린 경찰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Kichun Park

독일 내 한인 촛불집회에 대해 독일인들의 솔직한 생각은 무엇일까? 한가로운 휴일 오후의 광장을 한인들이 단독으로 사용하고 거리를 행진하면서 유발된 소음과 교통문제를 지적하기는 했지만, 독일인들은 자국의 공관이 허가한 집회를 신뢰한다는 간단명료한 대답을 내놨다. 독일이 한인들에게 매주 집회를 허락한 이유는 한인들이 가이드라인과 소음에 관한 규정 및 규율을 엄격하게 잘 지켰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도리어 한국을 응원하는 이도 있었다.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다른 국가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된 점을 높이 평가하는 독일인도 있었고, 한국이 더욱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로 거듭나 독일과 함께 세계평화에 힘쓰는 날을 기다린다고도 했다. “독일인의 광장을 사용하는 한국인”이라는 나의 표현을 지적하는 독일인도 있었다. 광장은 모두의 것이지 독일국적을 가진 자들만의 것이 아니라면서 말이다. “태어나 보니 우연히 독일 땅을 밟고 있을 뿐인데, 왜 자꾸 국가와 인종으로 우리들을 구분 짓느냐”는 그의 말 속에서, 선진 국민의 품격을 느끼기까지 했다.

“나라 밖의 촛불집회는 자국의 부끄러운 치부를 들추는 일이자, 국격을 떨어뜨리는 일”이라는 다른 한국인들의 말에 대해 독일인들은 또 어떻게 생각할까?

“한국을 아는 모든 사람들은 이번 국정농단 사건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인들이 신뢰를 잃은 대통령에게 퇴진을 요구하고 있음도 알고 있습니다. 그 목소리들이 한국의 국격을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나라에 살면서도 조국의 안녕과 민주주의를 걱정하는 이들은 멋진 사람들 아닌가요? 국경과 국적에 너무 연연하지 마세요. 옳은 일에 목소리를 내는 일이잖아요. 그리고 독일경찰을 신뢰하세요, 그들은 무턱대고 거리행진을 허락해주는 단체가 아닙니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고,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는 그들의 생각만 재차 확인한 인터뷰였다.

정은비 시민기자 (베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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