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말하는 이야기꾼,
댄스 퍼포머 이종환

“같은 조선사람? 지랄하네. 조선이 밥 먹여준다디? 그렇게 귀한데 왜 잃어 버렸냐? 조선놈이나 일본놈이나 다 똑 같애. 굽신굽신 엎드려서 밥 얻어먹을 수 있으면 그 새끼가 주인이야.”

연극 ‘까마귀’에서 옥종길로 분해 악역을 맡아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배우 이종환.

지난해 11월, 연극 ‘까마귀’ 중 옥종길의 대사다. 연극 ‘까마귀’는 군함도를 배경으로 해서 강제로 징용에 끌려간 조선인들의 비참한 생활과 자유를 위해 끝없이 탈출하려는 징용공들의 이야기다. 그 중 옥종길은 일본군에 붙어 조선인을 괴롭히는 악랄한 역할이다.

“연극이 끝나고 주위에서 죽여 버리고 싶었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 듣고 정말 좋았어요. 그만큼 제가 그 역에 몰입했다는 뜻이니까요.”

배우 5년 동안에 들은 최고의 찬사라는 이종환(36세) 씨. 극중 옥종길 역을 맡아 몸을 사리지 않고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그가 배우가 된 이유는 순전히 우연이었다. 소속극단인 사단법인 문화강대국이라는 예술단체에서 춤을 출 배우가 필요했던 것이 계기였다.‘7080 콘서트’에서 마이클 잭슨 역이었다. 학창시절 스트리트댄스 동아리활동을 해왔던 그를 위해 마련된 자리인 듯 자연스럽게 역할을 맡게 됐다.

“그때 저는 미용사로 일을 하고 있을 때였어요. 일 끝나고 밤 9시부터 연습실을 오가며 연습했죠. 그리고 무대에 올랐는데 미치겠더라고요. 객원으로 한 두 달 정도 있다가 결단을 내렸죠. 19살부터 해왔던 미용일을 그만두기로.”

31살의 결심. 남자 나이 서른이면 슬슬 안정을 도모할 나이다. 장손의 외아들로 집안의 기대치에 적어도 흠집은 내지 말아야겠다는 스스로의 약속도 이번 기회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내면의 목소리보다 크지 않았다. 가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연기도 모르고, 노래도 모를 때 원주에서 뮤지컬 제의가 왔어요. 원주로 왔다 갔다 하면서 자동차에 있는 동전을 긁어서 겨우 밥을 먹을 정도로 어려웠죠. 하지만 이일을 놓을 수 없더라고요.”


예술인들은 배고픔과 열정이 비례하는 걸까. 이때의 경험은 그를 더 간절하게 독려하는 채찍이 됐다. 그를 부르는 무대라면 큰 역이건 작은 역이건 가리지 않았다. 2012년 8월에 열린 레저총회 때의 일이다. 문화강대국에서 ‘헤어쇼’를 주제로 무대를 만들었다. 가위춤을 추며 머리를 자르는 퍼포먼스에 그만한 적임자는 없었다. 10여년 간의 미용경험이 십분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헤어쇼는 미용하는 분들의 로망이죠. 저는 그걸 미용업을 접고 무대에 서면서 이뤘죠.”

지금은 그를 포함해 2명뿐이지만 ‘본때’라는 댄스팀도 생기고, 이것저것 많은 활동을 하게 됐고, 또 교육활동도 하는 등 처음 시작할 때보다 형편이 많이 나아졌단다.

“밀알재활원에서 지적장애인을 대상으로 문강 친구들과 함께 댄스교육도 하고, 난타도 하죠. 처음에는‘나도 어쩔 수 없이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있었구나’라고 느낄 때가 있었죠. 그런데 우리도 잠재적 장애인이잖아요. 장애인과 함께 벌써 4년을 함께 했는데 그들의 열정에 깜짝 놀랄 때가 많아요. 열정면에서는 그들한테 배워야할 것 같아요. 지금은 식구들 같고 되게 좋아들 하시죠.”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이 어떤 것인지 물었다. 최근에 무대에 오른 ‘까마귀’와 오늘 자신을 있게 한 ‘7080 콘서트’를 꼽는다.

“나쁜 놈이라고 욕할 때, ‘진짜진짜 죽여버리고 싶더라. 진짜 나쁜 놈이다’라고 코멘트해줬을 때 정말 좋았어요. 제일 좋은 칭찬인 것 같아요. 옥종길을 제대로 표현했다면 욕을 먹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연기를 잘했으니까 그런 소리를 들었겠죠?”

연극 ‘까마귀’는 배우들이나 모든 스텝들 전체적으로 기운이 달랐다고 복기한다. 각자 파트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잘 버무려진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지역에서 연극만 하면서 살기는 힘들죠. 진짜 배고플 때는 원치 않는 다른 행사도 뛰어야 하고. 그런데 저는 다시 예전에 돈 벌수 있는 미용실로 돌아가라고 하면 안 돌아갈 것 같아요.”

문화예술분야가 수도권에 집중되고, 지역에서 활동하는 공연예술가들은 지역에서조차 대우를 못 받는 것이 현실이다. 예술가로 사는 것은 녹록치 않다.

“그래서 계속 노력 중이에요. 물론 한 장르만 계속 하는 것도 전문적인 자기 분야기 때문에 좋지만 저는 춤에만 머물러 있지 않으려고 해요. 광대 공연도 하고 탭댄스도 배우고. 무대에 오래 서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퍼포머로 활동하려는 것도 그 이유죠.”

더 오래 더 많은 무대에 서기 위해 끝없이 오늘의 그를 담금질한다.

“저는 몸으로 이야기하는 이야기꾼입니다. 뭔가를 만들어 낸다는 게 어렵기는 하지만 아이템이 쌓이고 퍼포먼스를 할 수 있는 레퍼토리가 많아지면 이야기꾼이 되는 거잖아요.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광대가 되는 게 꿈이죠.”

그가 생각하는 소통방식은 어떤 것일까?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공연을 하고 싶어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려는 노력은 안하고 ‘보러 와라’는 식으로 경계선을 그어놓고 예술이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가까이 있고 생활에 밀접해 있고, 옆에 있고 함께 있는 것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저 스스로 거리로 나가서 사람들과 섞이길 원해요. 함께 걷고 버스킹도 하면서 ‘나 오늘 광대 봤어’, ‘나 오늘 광대가 노란 풍선 줬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실제 지난해 4월 16일에 광대로 분장하고 거리로 나가 사람들에게 노란 풍선을 나눠주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나름대로 시대를 느끼고 싶었다고 한다. 2017년 올해의 계획을 물었다.

“문강에서 세워놓은 공연계획들이 많습니다. 가까이는 ‘까마귀’ 앵콜공연이 있을 것 같아요. 옥종길 역을 할 것 같고요. 올해도 역시 막상 기획하고 거리에 나갔을 때 힘든 부분들도 있겠지만 최대한 노력해보려고 해요”

작은 체구에 다부진 몸매다. 어디서 그런 악다구니가 나왔을까 싶게 ‘까마귀’ 무대에서 악역을 소화해냈다. 웃음 많고 선한 모습도 보이지만 한편으론 날카로운 눈빛이 스친다. 10여년 넘게 하던 일을 팽개치고 무대에 뛰어들 만큼 무모함도 지녔다. 또한 결단력도 있다. 노력하면 뭐든 할 수 있다는 말은 죽은 말이다. 하지만 노력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는 것 또한 현실이며 사실이다. 여전히 그는 광대로 살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춘천에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 하는 광대가 있다. 그가 나눠주는 노란 풍선을 받았으면 좋겠다. 거리에서 광대를 만난다면 인사를 건넬 수 있을 것 같다.

김정운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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