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하는 문제는 세상 어느 부모나 갖는 고민일 것이다. 견해나 관점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모든 부모는 자기 자식을 잘 교육하기를 바란다. 그 ‘잘’이라는 부사를 어떻게 푸느냐에 자녀교육에 대한 각자 부모의 답이 달려있을 것이다.

아들 이민서와 함께

왜 홈스쿨링인가

내 경우에는 ‘잘’이라는 부사를 ‘자유롭게’ 정도로 풀었던 것 같다. 큰아이는 중등 전 과정까지, 작은아이는 중학 1학년 과정까지 홈스쿨링을 했다. 홈스쿨링은 생활의 ‘자유로움’은 물론이고 무엇보다도 시험과 평가라는 유일한 목적에 가둬진 배움을 ‘자유롭게’ 해주었다. 평가받을 것에 대한 부담이 없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생활 자체에서 배움의 빛이 뿜어져 나왔다. 자기의 속도에 따라 성장하는 우리는 어떤 것에도 구속받지 않는 존엄한 존재였다.

그런데 홈스쿨러들은 각 가정의 교육관과 사정에 따라 개성이 천차만별이었으므로 사실상 연대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았다. 홈스쿨링을 10여년 지속하면서 느낀 갈증은 공동체의 힘이었던 것 같다.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격언의 교훈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던 즈음 홈스쿨링의 ‘대안’을 만나게 됐다.

왜 대안학교인가

홈스쿨링을 하면서 결핍을 느껴가고 있을 때 만난 춘천전인학교는 결핍을 채움은 물론 홈스쿨링을 통해 구현하고자 했던, 아이를 향한 나의 교육지향을 잘 계승·확장해 줄 것으로 기대됐다. 행운이 깃들었던 것일까. 만날수록 점점 사랑하게 되는 연인처럼 애초의 기대보다 더욱 풍요로운 경험을 이 학교에서 하고 있다.

대안학교를 다니며 눈에 띄는 점은 아이가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유아들이 놀이를 통해 배우듯 이곳은 배움과 활동이 유리되지 않는다. 교과 진도나 시험 등에 얽매이지 않는 각종 교과활동은 그 활동자체가 목적이 된다. 시험과 평가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으므로 각자의 관심정도와 능력에 따라 배움을 채워간다. 이렇게 촉발된 호기심은 각자 다른 방향으로 그 호기심을 확장해 자기의 지식을 스스로 쌓아간다. 일률적으로 주입된 지식이 아니므로 서로 부족한 정보를 채우는 지식의 품앗이가 일어난다. 이런 현상은 학교가 심혈을 기울여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 수업에 뚜렷이 나타난다.

대안에는 정답이 없다. 여러 대안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곳의 선생님들은 매 학기 부지런히 연구하고 실험하고 도전한다. 학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들이 소위 ‘실험쥐’가 되는 것에 전혀 개의치 않으며 애정과 믿음을 가지고 지지한다. 그 모든 대안 실험의 초점이 ‘부모의 심정으로’ 철저하게 아이들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에 하나 처참한 실패를 하더라도 우리는 서로를 꾸짖지 않을 것이다. 결국 모든 부모도 자녀교육에 실수하지 않는가.

요즈음 교육현장에서 교육의 세 주체인 교사-학생-학부모의 관계가 갈수록 꺼림칙해지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춘천전인학교에서는 이 세 주체의 건전한 삼위일체가 잘 실현되고 있다. 이곳의 교사와 학부모는 대립, 상하관계, 껄끄러움 등이 없는 갈등청정구역이다. 동지적 입장에서 능력껏 학교를 섬기고 서로 도움을 요청한다.

두 개의 선물 : 홈스쿨링과 춘천전인학교

온실 같던 홈스쿨링 속에서 연둣빛이었던 아이는 햇볕 쏟아지는 뜰 같은 춘천전인학교에서 결핍된 모든 자양분을 온몸으로 빨아들이듯 맘껏 꽃피우고 열매 맺으며 진초록으로 변해간다. 시간이 아까울 지경이다. 조만간 어쩔 수 없는 입시와 경쟁의 그물에 걸려들게 되겠지만 나는 확신한다. 이곳에서 익힌 삶의 방향성, 배움에의 태도, 소신을 지켜가는 힘, 이런 것들이 어떤 상황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이곳의 아이들의 삶을 탄탄하고 건강하게 지켜나갈 것이라고.

유경 (전인학교 학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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