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고고함 뒤에 숨겨진 고독함

이번 시즌 동안 3개의 실내음악 앙상블의 팀 리더 및 총무로서 쉽지 않았던 일정들과 연주, 그리고 뒷정리를 진행하며 드는 생각이 있다. 이 자리의 의미를 권력자라고 생각하든, 총책임자로 생각하든, 심부름꾼으로 생각하든 무겁고 어렵다는 것이다. 그까짓 앙상블 세 팀을 이끌고 나서 엄살을 부리는 것은 아니다. 어릴 적부터 반장, 회장, 실장, 전교회장, 악장, 리더, 총무 등을 맡아오면서도 언급해본 적 없는 소회를 오늘에야 밝혀본다.

매우 부끄러운 기억이지만, 나는 초등학교 시절에 왕따 주모자가 된 적이 있었다. 나는 ‘쟤랑 놀지 말라’고 한 적이 없는데, 나와 말다툼한 친구를 다른 친구들이 ‘알아서’ 놀아주지 않은 것이다. 나는 당시 학급 회장이었고 남녀친구들 모두가 고루고루 잘 따라줬는데, 그게 영향을 미친 것이었다. 물론 어린 마음에 나도 그 친구를 노려보거나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여서 학급친구들이 압박을 느낄 만한 행동을 했을 것이라 예상한다. 그래서 의도치는 않았어도 부끄러운 기억으로 여기고 있다.

억울해하기만 했던 그때의 나에게 어머니께서 해주신 말씀이 있다. 당시에는 썩 이해할 수 없었지만 기억은 하고 있었다. “감투를 썼으면 그 무게를 견뎌야 한다.”

학교를 같이 다녔던 내 여동생에게 짓궂은 남학생들이 장난을 치면 달려가서 혼내준 적이 많았다. 하지만 내가 전교회장이 된 이후로는 내 동생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의 불의에도 똑같이 대응했다. 솔직히 내 동생이 가장 소중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기에, 동생을 더 챙기려는 정당한 명분을 만드느라 다른 학생들을 더욱 보호했던 것이었다. 내 동생이 전교회장 친언니를 둔 이유로 학교생활이 약간은 편하길 바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나이에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 어른들의 잘못된 사회생활만 골라 배운, 얼마나 영악한 발상이었는지 모르겠다. 후에 ‘전교회장 동생’이라는 이름 때문에 자기 스스로 뭔가 성취하고 보람을 느끼기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동생의 이야기를 듣고, 동생에게 미안하면서도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어릴 때는 멋모르고 선생님이 자리를 비우시면 친구들을 조용히 시키고, 공책을 걷어다 선생님 책상에 올려놓는 일을 하는 정도라고 생각했던 ‘감투자리’가 얼마나 어렵고 무거운 책임의 자리인지 느끼기 시작했다. 사적인 인간관계와 의견조차도 마냥 자유로울 수 없고, 남들은 문제없이 누리는 개인적 영역도 감투를 쓴 순간부터 얼마나 신랄하게 발가벗겨져 지적당할 수 있는 자리인지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나는 성인이 되어가면서 각종 ‘감투자리’ 선거가 다가올 때마다 바보인 척, 책임감이 부족한 척하며 남들과 눈 마주치기를 피했다. 감투 없이 사니까 너무 편하고 자유로웠다. 가장 좋았던 일을 하나만 꼽자면, 나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사람들과 나를 위해 마음껏 의견과 행동을 피력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을까. 독일 베를린음악대학교를 다니던 어느 해부터 독일어로 대화해야 하는 독일 연주자들 사이에서 또 다시 팀의 리더나 총무자리를 떠맡기 시작했다. 언어도, 시스템도, 문화이해도 낯설고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오히려 간단한 것은 철저하게 민주적인 형식으로 유지한다면 큰 문제는 없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프랑크푸르트로 거주지를 옮겨도 변함이 없었다.

아무리 독일이 선진국이라고 하더라도 주로 어깨가 두껍고 강렬한 인상의 남성들이 우글거리는 타악기 영역에서 동글동글하게 생긴 동양인이자 젊은 나이의 여성 타악기 연주자인 내가 쉽지 않은 요건을 갖췄음은 유감스럽게도 아직은 사실이다. 게다가 팀의 리더를 맡는다고 내가 얻어가는 것은 거의 없다. 돈을 더 받아도 나는 늘 n분의 1씩 팀원들에게 나누어주거나 모두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학생일 때는 생활기록부 점수나 장학금으로 감투의 대가를 받았는데 이제는 그런 것도 없다.

앙상블의 리더는 누구도 불이익을 받지 않고 사람들의 불만이 가장 적은 합의점을 찾아내는 데에 총력을 다 해야 하는데, 오히려 내가 불이익과 불만이 가장 많을 때가 대부분이다. 나는 개인적인 의견을 거의 낼 수 없고, 그저 리더로만 행동해야 한다. 리더가 공식적인 결론을 하나 내놓을 때까지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의견을 나눠야 하고, 부분적으로 무산이 된 문제들을 정확히 진단하고, 더욱 공을 들여 절차를 다시 시작해야 하고, 이 일이 잘못될 만약의 수까지 모두 체크해야 한다. 하지만 이 과정을 모르는 이들도 많기 때문에 사람들은 나에게 너무 쉽게 아무 말이나 내뱉기도 한다. 그런 날이면 티 안 나게 사리사욕을 채우는 것이 쉬울 것이라는 생각도 많이 든다. 쉽게 말하자면 나는 모두를 책임지고 대변해야 하기 때문에 나는 나를 지켜서도 안 되고 오히려 비난을 받는 데에 노출되어 있어야 한다.

의도적인 접근을 하며 부정을 권유하는 이들에게 얼굴을 붉혀야 할 일도 생긴다. 별 대수롭지도 않은 감투를 쓴 나를 찾아와 자기에게 유리하게 일을 진행해 달라며 개인적인 부탁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그 청탁을 받아주지 않으면 나는 비인간적이라는 욕을 듣고, 상황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 말을 다 믿어버리기도 한다. 나는 졸지에 못된 사람이 되지만, 그래도 다시 팀원들이 나를 신뢰할 만한 대안을 내놓고 성난 분위기를 잘 다독여야 한다. 팀이 깨지지 않도록, 그리고 모두가 진심으로 기뻐하며 좋은 연주를 해낼 수 있도록 말이다. 내가 잘못하지 않았어도 내 책임이다.

요령만 있으면 한 팀이든 세 팀이든 열 팀이든 리더를 맡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렇지 않다. 나의 세 팀만 해도 각각 구성원도, 머릿수도, 성격도, 방향도 다르기에 운영방식은 철저히 다르다. 음악을 하는 팀이라는 전체적 윤곽은 같아도 세 팀을 완전하게 독립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나도 남들처럼 평범한 사람이기에 부족한 점이 있는데, 뭐든지 다 알고 능숙한 슈퍼맨처럼 결점을 최소화해야 한다. 때로는 내 앞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사정하는 사람에게 “미안하지만 들어줄 수 없어요. 모두를 생각해야 합니다”라고 객관적으로 설명해야만 한다. 그렇게 뒤돌아서 는 날이면, 타인이 흘리는 눈물에도 끄덕도 하지 않은 내 모습에 대해 죄책감이 든다. 나도 인간이니까. 그래도 참아야 한다. 그게 바로 감투와 완장의 무게다.

그까짓 앙상블 세 팀을 이끌며 마음고생이 많고 몸도 피곤하다. 적지 않은 내 개인적인 일정도 차질 없이 계속 소화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나는 평가된다, 좋은 리더인지 아닌지. 결과는 상관없고, 후회도 없다. 나는 정직했고 정말로 최선을 다 했다. 좋은 점수 받아 인기를 많이 얻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나는 다른 방법을 선택했을 것이다.

아주 작은 실내음악 앙상블 팀도 한 사회다. 앙상블 리더 주제에도 생각할 것이 많은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한 국가를 운영하고 책임지겠다며 자발적으로 나선 그대는 도대체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염려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정은비(30·후평3동)
타악기 연주자현재 독일 유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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