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중대한 보도가 있겠습니다. 전국의 청취자 여러분께서는 기립해 주십시오.” NHK 아나운서 와다 노부카타의 음성이다. 이어 시모무라 히로시 정보국 총재의 “천황폐하께서 황공하옵게도 전 국민에게 칙서를 말씀하시게 되었습니다. 지금부터 삼가 옥음(玉音)을 방송해 드리겠습니다”라고 했다. 이어 기미가요(일본국가)가 나왔다. 잡음 속에서 남자의 떨리는 음성이 들렸다. “친후카쿠 세카이노 타이세이토 테이코쿠 겐죠토니 칸카미(짐은 세계의 형세와 제국의 현상에 비추어)…닌지신민 소레 요쿠 친가 이오 타이세요(그대 백성들은 짐의 뜻을 마음에 새겨두고 지켜라).” 그 전날 왜왕 히로히토가 녹음한 내용이 흘러나왔다. 기미가요가 다시 나오고 시모무라 히로시 정보국 총재가 “삼가 덴노(천황)의 옥음방송을 마칩니다”라고 했다. 와다 노부카다 아나운서가 “삼가 조서를 봉독하겠습니다”라며 다시 낭독했다. 이어 관련 뉴스, 총리 담화 등이 이어졌다. 이미 전날 밤 9시 뉴스, 그리고 아침 7시 21분에 정오에 중대한 발표가 있을 것을 예고했지만 일본의 패망소식일 줄은 몰랐다.

“보통 날과 같이 아침에 출근했어. 총독부(광화문) 앞의 식량영단(食糧營團)이라는 관공서였지. 12시에 라디오로 왜왕(倭王)이 떨리는 목소리로 담화문인가 발표하는 걸 들었지. 갑자기 만세 부르며 난리가 났어. 일본인들은 바로 기가 팍 죽데. 모두 태극기 들고 거리로 뛰쳐나갔어.” 태극기가 어디서 났냐고 물었다. “그렸지, 태극기를 그려서 들고 소리 지르며….” 해방된 날 온천지는 태극기 물결로 나부꼈다. 소화(昭和) 20년 그러니까 1945년 8월 15일 해방되던 순간, 당시 스무 살이었던 어머니의 기억이다. 어머니 말씀 가운데 ‘담화문’은 왜왕의 ‘대동아전쟁 종결의 조서’, 다시 말해 ‘항복선언’이다. 옛 가요 마니아인 춘천시 우두동의 박차랑 선생께서는 이렇게 회상하신다. “모두 태극기 들고 남인수 선생의 <감격시대>를 부르며 밤늦도록 거리를 휩쓸고 다녔다우.”

거리는 부른다 환희에 빛나는 숨쉬는 거리다 미풍은 속삭인다 불타는 눈동자 불러라 불러라 불러라 불러라 거리의 사랑아 휘파람 불며가자 내일의 청춘아

바다는 부른다 정열이 넘치는 청춘의 바다여 깃발은 펄렁펄렁 바람세 좋구나 저어라 저어라 저어라 저어라 바다의 사랑아 희망봉 멀지 않다 행운의 뱃길아

잔디는 부른다 봄향기 감도는 희망의 대지여 새파란 지평천리 백마야 달리자 갈거나 갈거나 갈거나 갈거나 잔디의 사랑아 저 언덕 넘어가자 꽃피는 마을로

- 강해인 사·박시춘 곡·남인수 노래, 1939년

다시 어머니에게 물었다. “일본 놈들을 해치지는 않았나요?”, “해치고 그러지는 않았어. 근데 일본사람들이 그 다음날부터 출근을 않는 게야. 바로 자치제(自治制)가 이루어지데…. 젊은이들이 나서서 행정조치하고 관공서 등을 접수했지.”

이튿날 8월 16일, 형무소 문이 열리고 억울한 옥살이를 하던 사람들이 빛을 보았다. 문자 그대로 빛을 되찾은 ‘광복’(光復)이었다. 우리는 통일되는 날, 이 벅찬 경험을 다시 할 수 있다. 그날은 무슨 노래를 부를 것인가.

※ <감격시대>를 친일가요로 분류하는 시각이 있는데 이는 어처구니없는 오류다. 전문성 떨어지는 기자 혹은 필진들이 범한 오류가 인터넷을 통해 일반화된 현상 중 하나.

김진묵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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