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신내

                                                     민왕기


시 한 편 쓰고 술 마시러 가는
길 위의 뉘엿뉘엿이여
혼자 술 마실 집을 찾는 일로
저녁은 어둑해지고, 나도 조용해지리
소주 한 병과 돼지 머리고기 몇 점,
연서시장 알전등 아래 혼자 술 마시는
이들의 저녁이여
취할 만한가, 용서할 만한가, 울 만한가,
집으로 돌아갈 만한가
술 몇 잔에 살 만해지는,
뉘엿뉘엿한 마음의 적벽이여
 

다만, 살 만해지기 위하여. 연신내 연서시장쯤으로 뉘엿뉘엿 마음이 기우는 혼술. 혼을 불러 위로도 하고 술도 권해 보는 굿판. 어둑해지는 저녁과 함께 마침내 조용해지고 말 시 한 편의 배후.

소주 한 병과 돼지 머리고기 몇 점을 알전등 아래 펼쳐놓고(분명, 그 아래선 알인 것들만 무성하리라.) 그것들을 연방 집적대는 연신내 연서의 말꼬리. 1만한가, 2만한가, 3만한가, 4만한가. 보아라! 5만해지지 않는가.

그렇게 뉘엿뉘엿 저물어서야 그래 보아야 비로소 살 만해지기도 하지 않는가.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숨도 쉬어지지 않겠는가. 마음에 붉은 벽이여, 아니면 쓸쓸함의 바람벽이여. 바람이 고요히 불고서 눈을 감는 생의 의혹들이여.

시 한 편이 쌀 한 됫박이 되기도 하고, 시 한 편을 쓰면 소주 한 병으로 바꿔주기도 하는, 눈부신 안도감을 쌓아 벽을 세워보는 시인의 저녁.

알몸인 날것들의 비린 고해성사를 어째야 하는가. 미소만 간신히 발굴한 돼지머리의 해체된 파편이 가끔은 살 만한 위로가 되어주기도 하더라는 역설.

시인들의 블랙리스트가 떠도는 어머니의 나라에서 시인은 그렇게라도 살 만해지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유기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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