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년(丁酉年) 입춘(立春)이 지났다. 봄맞이 하는 날이 벌써 다다랐다. 한겨울 추위에 꽁꽁 언 강물 밑으로 흐르는 짙푸른 봄물을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반투명의 얼음은 푸른 봄물이 흐르는 장면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눈 녹은 물이 겨울의 차디찬 하얀 물 색깔을 푸르게 바꾸어 흐르는 장면이다. 얼음 아래로 흐르는 물이지만 보고 있으면 봄이 왔음을 직감할 수 있다. 손닿으면 차지만 눈으로 보면 봄물은 따뜻한 인상을 남긴다. 봄물을 따라 물고기, 물벌레들이 활발히 움직인다.

신연강이 흐르던 곳, 의암호

춘천(春川)을 우리말로 봄내라 한다. 봄물이 흐르는 강이라는 뜻이다. 봄물은 겨울의 얼음마법에서 풀려 깨어나게 하는 물이다. 봄물이 흐르는 강을 따라 가보면 안다. 미처 우리가 발견하지 못했던 일들이 작지만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고 있음을 말이다. 물고기가 움직여 먹이활동을 하고, 강가에 홀로 핀 꽃다지 풀꽃도 눈에 띈다. 얼핏 보면 보이지 않는 모습들이다. 꽃다지는 노란 작은 꽃잎이 눈을 가까이 대야 제 모습을 다 보여준다. 정말 신기하다. 햇빛 잘 드는 양지에는 벌써 냉이가 크고 있음도 볼 수 있다. 춘천의 봄물이 주는 선물이다. 춘천사람들은 봄물 흐르는 강처럼 언제나 희망을 마음에 담고 살아간다. 그 증거가 춘천이란 지명과 춘천의 강 이름에 녹아있다.

공지천

봄물 흐르는 강처럼 희망을 담은 지명은 춘천의 모든 강 이름에서도 나타난다. 이제는 대부분 호수에 묻혔지만, 그 이름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모진강(母津江), 자양강(紫陽江), 소양강(昭陽江), 신연강(新淵(延)江) 등이 춘천의 강 이름이다. 모진강은 화천 남강에서부터 춘천댐까지이고, 자양강은 모진강이 끝나는 지점에서 소양강과 합쳐지는 지점까지다. 소양강은 인제 합강에서 자양강과 합쳐지는 지점까지고, 신연강은 소양강과 자양강이 합쳐져 남산면 방하리에 이르는 강이다. 이밖에도 동산면에서 신동면으로 흘러 북한강으로 합류하는 팔미천(八味川), 동면에서 소양강으로 합류하는 지내천(枝內川), 화천 사내면에서 흘러 모진강으로 합류하는 사내천(史內川), 삼천동 아래로 흐르는 마삼천(麻三川), 죽림동과 근화동 앞을 흐르던 대바지강, 강촌 앞을 흐르는 둥덜리강, 대룡산 고은리에서 신연강까지 이르는 공지천 등 소하천이 많다. 

춘천의 강 이름은 대부분 힘찬 기운을 품고 있다. 모진강은 어머니의 젖줄을 뜻하고, 자양강은 하늘로부터 내려 온 자줏빛 줄기의 태양을 뜻한다. 소양강은 밝은 태양이 내리쬐는 의미고,

신연강은 새롭게 못을 이뤄 용트림을 한다는 의미다. 게다가 소하천이지만 춘천에서 상당히 중요한 공지천은 ‘신이 준 내’, ‘신의 내’라는 의미다. 공지천은 곰실내와 곰짓내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때 ‘곰’은 동물 ‘웅(熊)’의 뜻도 있지만 이것은 후대에 만들어진 말이고, 원래는 신(神)이나 군장(君長)을 뜻하는 말이다. 그러니 대룡산의 산신이 내린 물인 ‘신천(神川)’, ‘신의 내’란 말이다. 신이 내린 물이 흐르는 강은 곧 신성시공(神聖時空)이 되는 것이다. 

소양강과 자양강의 합수머리

춘천의 강 이름에서 풍기는 의미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강은 그 지역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다. 아이가 어머니로부터 얻을 수 있는 젖줄이다. 춘천사람들은 그렇게 고마운 강을 대하면서 이름도 봄물처럼 힘차게 솟아나고 흐르는 의미로 지었다. 그 물을 먹고, 멱도 감고, 고기도 잡고, 기우제도 지내고, 농작물을 키워내고, 빨래도 하고, 모든 액운을 물 밑으로 가라앉혀 정화도 했다. 춘천의 정체성이 ‘솟음’이라는 또 하나의 증거를 강 이름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학주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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