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는 금강산만큼 아름다운 묘향산이 있다. 평양에서 2시간 거리인 평안북도 향산군에 있는 산이다. 안내원의 설명에 따르면 “묘하게 생기고 향기가 난다”고 해서 묘향산으로 불린다고 한다.

국제친선관과 묘향산

묘향산 자락에 ‘국제친선전람관’이라는 이름의 수장고가 있다. 3층 건물의 청기와 지붕과 양 날개의 철문에는 황금색의 둥근 손잡이가 있어 둘이 맞잡고 당겨 열도록 돼있어 웅장함을 더한다. 입구부터 카펫이 깔려있어 신발에 덧신을 신고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당연히 사진촬영은 금지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커다란 교실 같은 수장고가 나타나고, 맨 앞에는 일간신문지 크기의 선물자료집(목록)이 진열돼 있다. 무려 32권이다.

그 자료집에는 전 세계 178개국의 정상들이 김일성과 김정일에게 보낸 선물들이 일자별, 대륙별로 기록돼 있었다. 선물은 모두 21만7천444점인데, 그중 16만5천900여점이 김일성이 받은 것이고, 나머지 5만1천500여점이 김정일이 받은 것이라 한다. 하루 평균 8점씩 보내왔다고 하는데, 김일성 부자의 생일이나 특별한 기념일 등에 전 세계 지도자들이 앞 다투어 보내 온 선물은 모두 특별히 제작된 것으로 전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것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72년 12월 1일 박정희 대통령이 은그릇, 은 담배함을, 1990년 10월 19일 노태우 대통령이 금장식 은수저 및 그릇, 주전자와 양복옷감, 자수정을, 2000년 6월 13일 김대중 대통령이 대형칼라TV와 장식용 사기접시를 보냈으며, 윤보선을 비롯해 여러 대통령들이 보낸 선물들이 진열돼 있었다. 이병철, 정주영 등 기업 회장들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만든 포니자동차, TV, 냉장고 등을 선물로 보냈다.

우리는 모두 깜짝 놀랐다. 단순히 사회주의 국가나 공산주의 국가에서 보내온 선물이려니 했는데,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은 물론이고 케네디 등 미국 대통령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 지도자들도 빠짐없이 선물을 보냈다는데 놀란 것이다. 그들은 그것들을 모두 위대한 김일성에게 올린 선물이라고 자랑하고 있었다. 대체 민주주의 국가들이 북한을 주적으로 설정하면서 선물은 왜 보냈을까? 국가적 관례인가, 예의인가?

전람관은 1970년대부터 건설되기 시작했다. 묘향산에 굴을 파서 150개가 넘는 수장고를 만들어 대륙별로 구분해 전시한 것도 놀랍고, 이미 만들어진 수장고가 포화상태라 인접 산으로 저장고를 파면서 대를 이어 계속 저장해 나가고 있다는 것도 놀라웠다. 안내원들의 설명으로는 하늘에서 폭탄이 떨어져도 끄떡없다고 한다. 아마 지금도 그 일은 계속되고 있을 것이다. 이런 것들은 3대 세습이나 이념논쟁과 상관없이 나름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우리의 역대 대통령들은 누구에게서 무엇을 선물로 받았는지, 어디에 있는지, 우리가 볼 수는 있을지 궁금하다. 얼마 전 국정농단의 당사자가 대통령 선물을 챙겼다는 보도는 경악스럽다.

묘향산에는 보현사(普賢寺)라는 사찰이 있다. 784년에 의상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소실됐다 1024년에 복원됐다고 한다. 우리는 보현사역사박물관에 있는 팔만대장경보존고에서 목판활자를 볼 수 있었다. 해인사의 팔만대장경과 함께 당대의 기술력이 집약된 문화대국의 상징을 볼 수 있어서 뿌듯하면서도 남북으로 나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보현사 경내에는 수충사(酬忠祠)라는 사당이 있다. 수충사는 17세기 초에 처음 짓고 1794년에 다시 지었다고 하는데, 임진왜란 때 승병장으로서 왜적과의 싸움에서 이름을 떨친 서산대사와 그의 제자 사명당, 처영의 제사를 지내던 사당으로 지금도 그들의 화상과 유품들이 보관돼 있다고 한다.

우리는 묘향산 계곡(하비로 계곡)에 자리를 깔고 앉았다. 숙소인 베개봉호텔에서 나온 직원들이 점심식사를 준비했다. 소고기 숯불구이다. 숯불을 피우고 삼삼오오 둘러앉아 소고기, 오리고기, 칠색송어(무지개송어)를 함께 구워 먹었다. 소고기는 아주 귀한 북한토종 한우다. 돌버섯, 두릅, 깻잎, 상치, 도라지 등이 쌈장과 함께 준비되고, 삼지구엽초, 단나무 열매로 만든 삼단향 술이 나왔다. 호텔직원들과 함께 고기를 굽고, 마시며 함께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면서 잠시 흥겨운 시간을 가졌다. 묘향산 아래에는 향산호텔이 있다. 그곳 직원들은 친절했으며, 우리에게 화장실 등을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비로봉에 올랐다. 비로봉은 해발 1천909m이고, 정상까지는 13Km 거리다. 은선폭포와 무릉폭포까지 약 4Km를 등반했다. 물빛은 유리알처럼 투명하고, 바닥에 깔린 조약돌에서 파란빛이 빛나는 곳이다. 등산로에서 여행을 왔다는 신의주 중학교 5학년 학생들을 만났다. 10여명의 학생들이 우리에게 반가운 인사를 했다. 여행을 왔다는 아주머니들은 “반갑습네다” 노래를 합창하며 인사를 건넨다. 함께 노래하며 인사를 교환하면서도 어딘가 연출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아 마음 한 구석이 편치 않음은 나만의 생각이었을까?

 

강성곤 (전 한국학중앙연구원 기획조정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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