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사칼럼] 말, 혹은 비겁한 자들의 무덤
[춘사칼럼] 말, 혹은 비겁한 자들의 무덤
  • 춘천사람들
  • 승인 2017.02.15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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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시월 말, 그동안 실체만 드러나지 않았을 뿐 많은 사람들이 의혹의 눈으로 지켜봐왔던 국정농단의 실상이 수면 위로 드러났을 때, 국정농단의 두 주역인 대통령과 최순실의 첫 마디는 “잘못했다, 수사에 성실히 임하겠다”와 “죽을죄를 지었다”였다. 진정성의 정도는 차치하고 일단 그 발언들은 대부분의 중범죄자들이 혐의가 이미 세상에 드러난 상황에서 내놓는, 일말의 선처를 구하는 고백의 변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석 달이 지난 지금, 그들의 고백은 “오래전부터 기획된 음모”와 “나는 모른다, 억울하다”로 바뀌어 있다.

‘앵무능언(鸚鵡能言)이어도 불리비조(不離飛鳥)’라 했다. 앵무새가 사람의 말을 한다 해도 새일 뿐 사람일 수 없다는 말이다. 이 말은 ‘말’의 본질을 여실히 드러내는 말이다. 말이란 ‘소리’가 아니라 ‘의미’이며, 앵무새가 하는 사람의 ‘말’은 한낱 ‘소리’일 뿐 ‘의미’가 담겨 있지 않으니 ‘말’일 수 없다는 것이다. 앵무능언 불리비조가 겨냥한 곳이 앵무새일 리는 없다. 앵무새가 사람의 말을 소리로 흉내 내는 그 짓, 그 짓을 앵무새가 아닌 사람이 하고 있다는 것. 이것이 이 말의 출전인 <예기(禮記)>의 작가가 겨냥한 과녁이다.

지금 우리의 귀는 앵무새의 부리가 아니라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의미를 새겨들을 수 없는, 한낱 소리일 뿐인 말들로 먹먹하다. 귀만 먹먹한 것이 아니라 가슴도 먹먹하다. “태극기를 들고 명동에서 남대문을 한 바퀴 돌아오는데 남녀노소 모든 분들, 우국충정이 너무 진지하셔서 눈물이 났다.” 이 말을 한 사람은 경기지사를 지낸, 현 새누리당 비대위원 김문수 씨다. 국정농단의 책임을 져야 할 정당에 소속된 사람으로 태극기집회에 나가는 게 적절한 일인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집회에 참석하는 게 왜 국정농단에 대한 반성이 부족한 것이냐”고 되묻고는 “집회에 우리 당원들이 많이 참석하고 탄핵 현안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참석했다”고 당당히 ‘말’했다. 그의 발언의 절정은 “내가 아는 박근혜는 국회의원들 중에서 가장 청렴한 분이었다”는 ‘말’이다. 필자에게 그의 ‘말’은 ‘말’이 아니라 한낱 ‘소리’일 뿐이다. 그는 이 ‘말’을 하기 전에 전혀 다른 ‘말’을 했기 때문이고, 그것도 불과 두어 달 전이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에 대한 즉각적인 탄핵소추와 출당조치를 공식적으로 촉구한다.” 지난해 새누리당 비주류 국회의원과 전·현직 광역단체장, 원외 당협위원장 등이 참석한 비상시국회의에서 그가 한 ‘말’이다.

셰익스피어는 말했다. “용감한 자는 태어나 한 번 죽지만, 비겁한 자는 수없이 죽는다.” 용감한 자는 인간이면 누구나 맞이하는 단 한 번의 죽음, 그것을 맞이할 뿐이다. 그러나 비겁한 자는 ‘살아남기 위해’ 끝없이 자신의 소신을 바꿈으로서 죽고 또 죽는다. 그 수많은, 누추하고 처절한 죽음의 진상들은 다른 누구도 아닌 그들 자신의 입에서 나온 ‘말’에 의해 밝혀지고 증명된다. 그들은 그렇게 살아남을 것이라고, 살아남았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그들은 스스로 자신의 무덤을 판 것이고, 제 손으로 판 무덤으로 걸어들어갈 것이다. 역사는 이 거대하지만 참으로 초라한 무덤들을 기록해놓은 비망록이다.

하창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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