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삼 캐 어머니 살린 효자의 일화…‘효자문’도 세워져
교육과 문화시설 곳곳 산재해 춘천 교육문화의 한 축 담당

춘천 구 시가지의 남부권을 이루고 있는 효자동은 문화와 낭만으로 가득하다. 효자마을이라고도 불리는 효자동은 팔호광장과 강원대학교 사이에 위치해 1·2·3동으로 나뉘어져 있다.
몇 차례의 변화를 거듭해 ‘효자동’으로 정해진 이곳은 원래 춘천군 부내면(춘천읍)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약사리(약사동)에 편입됐다가 1939년 읍제를 실시하면서 분리됐다. 일제강점기에 ‘수정(壽町)’으로 불리다 1946년 해방을 맞아 효자동이 됐다. 1970년에 효자1·2·3구로 나뉘었다가 1974년에 효자1·2·3동으로 고쳐부르게 됐다.

효자문

효자동의 범위도 변화가 있었다. 1990년에는 일부 지역을 후평동으로 넘기고, 1992년에는 석사동의 일부 지역을 편입했으며, 1993년에는 또 일부 지역을 근화동으로 넘겨 오늘의 효자동에 이르렀다.

효자동이라는 명칭은 전국에서 효자가 난 곳을 일컬어 부르는 지역명이다. 이곳 춘천에서도 효자에 관한 일화가 전해진다. 그 주인공은 ‘반희언’이라는 인물이다. 어머니의 병세가 악화돼 근심에 빠져있는 반희언에게 어느 날 산신령이 나타나 “대룡산에 가면 시체 세 구가 있는데 그 중 가운데 머리를 가져와 고아 드리면 병이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산신령의 말대로 했더니 거짓말처럼 어머니의 병이 나았다. 알고 보니 시체의 머리는 산삼이었다. 이러한 반희언의 효행이 널리퍼져 1608년 효자문이 세워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효자문은 터만 남고, 그 터에는 현재 춘천우체국이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아름다운 효행을 후세에 전하고자 2015년 11월 이곳에 다시 효자문을 건립했다.

효자동 낭만골목

효자1동은 춘천문화예술회관, 축제극장 몸짓, 담작은도서관, 낭만골목 등 춘천의 낭만과 문화·예술이 담겨있는 지역이다. 춘천문화예술회관의 경우 각종 전시회, 공연을 도맡아 하고 ‘축제극장 몸짓’ 역시 공연예술을 관람할 수 있는 소공연 전문공간이다. 낭만골목에는 벽화가 펼쳐져있고, 옛날 맛 그대로를 맛볼 수 있는 막국수 식당도 자리매김하고 있다. 벽화를 따라가다 보면 지역 주민들만을 위한 담작은도서관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지역 어린이들을 위한 도서관이자 주민들의 복지공간이다. 도서관 사서 허성옥 씨는 “지역 어린이들이 책을 많이 읽으면 좋겠는데, 숙제나 공부만 하는 모습을 보면 솔직히 조금 안타깝다”며 속내를 드러냈다.

효자2동은 강원대학교의 비중이 높다. 또한 춘천지방법원과 검찰청, 천주교 교구청과 청소년수련관이 소재하고 있어 교육과 사법, 종교적 위상을 빼놓을 수 없다. 강원대 중앙박물관에는 선사시대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유물들을 전시하고 상시 공개함으로써 학생과 일반인들의 역사의식을 함양할 수 있는 교육의 장이 되고 있다. 더하여 춘천시청소년수련관은 청소년들을 위한 복지시설로서의 기능을 톡톡히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효자3동에는 대표적으로 강원대병원과 5개의 큰 도로가 교차하는 팔호광장이 있다.

특히, 효자2·3동 지역은 강원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효자3동은 강대후문 상권이 중심을 이루고 있고, 효자2동에는 원룸들이 밀집해 원룸촌을 이루고 있다. 이에 따른 여러 문제들도 제기되고 있다. 대학생 단체 ‘강원대학교 인액터스’와 ‘네이버’가 함께 기획·제작한 ‘모두의 거리’는 강원대 주변 상권 활성화, 소상공인의 사회적·경제적 지위향상과 지역주민과의 관계증진을 목적으로 시작됐다. 상인들이 원하면 홈페이지를 제작해주고 홍보까지 해준다. 또한 네이버 ‘모두의 거리’ 사이트에 들어가면 맛집 등을 추천받을 수 있다. 한편, 옛날 자취와 하숙촌이었던 강원대 주변에 원룸촌이 형성되면서 주변 환경도 많이 변하고 이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특히, 쓰레기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으며, 원룸사업을 하는 외지인들에 의한 지역잠식 등으로 이웃 간의 풋풋한 정이 사라진 지 오래다.

정서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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