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 강원지부 김영섭 지부장

가슴팍을 파고드는 아침 한기에 한껏 몸을 웅크리고 시작한 이른 봄 아침이었다.
아직 떨쳐내지 못한 겨울의 기운에 겹겹이 껴입은 옷을 벗지 못하고 둔한 몸으로 전교조 사무실로 향했다. 조용하기만 한 건물 앞에 서서 잠시 숨을 고르고 조심스레 문을 당겼다. 요란스레 흔들리는 풍경이 겨울잠에서 미처 깨지 못한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여러 개의 문을 통과해 사무실에 닿으니 훤칠한 키의 한 사내가 몸을 웅크리고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네니 그제야 고개를 들어 눈을 맞춘다. 한 손에는 딱풀을 쥐고 사진 정리에 여념이 없던 그를 불쑥 찾아와 방해한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됐다.
현장에서 마주치던 강한 인상의 그가 아니었다.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주말 열리는 조합원 연수 때 조합원들에게 보여줄 사진을 정리 중이라며 급히 책상을 정리한다. 지부장이 된 지 이제 한 달 반. 아직은 사무처장일 때가 훨씬 익숙하고 편했다며 멋쩍게 웃는 전교조 강원지부 김영섭(47) 지부장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역사교사를 꿈꾸던 아이가 고3이 됐을 때 전교조가 출범을 했다. 면목고등학교에 재학 중이었는데 당시 4명의 선생님이 전교조에 가입했고, 학내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주로 문제풀이식 수업에 매몰돼 있던 학교에 불어 닥친 매섭고도 신선한 바람이었다. 아직 소년티를 벗지 못했던 그는 그렇게 전교조에 호감을 품기 시작했다.

“그저 역사가 재미있고 좋았어요. 역사학도가 된다는 것을 꿈꾸기도 했지만, 어릴 적부터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안정된 직장이 필요했어요. 자연스럽게 꿈은 좋아하는 역사를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역사 선생님이 됐죠. 어릴 때 저에게 역사를 가르쳐준 선생님들에 대한 좋은 기억은 별로 없어요. 당시 분위기가 워낙 입시 위주였고, 주입식 교육이었기 때문이죠.”

역사 선생님의 꿈을 이루기 위해 강원대 역사교육학과로 진로를 결정하며 운명처럼 춘천과 인연을 맺었다. 학교를 좋아해서(웃음) 학교를 오래 다녔다는 그는 1997년에 졸업을 하고 2000년에 신규 교사 발령을 받았다. 그렇게 꿈꾸던 역사 선생님이 된 순간이었다. 첫 제자가 떠오르냐는 질문에 그의 얼굴이 급속히 굳어졌다.

“항상 마음에 품고 살고 있죠. 그런데 그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용기가 제게 있을까요? 전 폭력교사였습니다.”

갑작스런 그의 고백에 잠시 숨을 멈췄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고개 숙인 그의 모습에서 아직도 떨쳐내지 못한 미안함이 내게로 밀려들어왔다.

“첫 발령지는 속초에 있는 동광농공고였습니다. 지금은 동광산업과학고로 명칭이 바뀌었죠. 변명 같지만 당시 그 학교에는 소외받고 지친 학생들이 많았어요. 그때 저는 어렸고, 그릇이 부족한 교사였어요. 아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안아주지 못하고,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에 그저 대응하기 바빴죠. 말로도 수많은 폭력을 행사하던 교사였습니다.”

그에게 변화가 찾아온 것은 전교조 가입 이후였다. ‘나는 전교조 교사다. 참교육을 하는 선생님이다’라는 말을 수없이 되뇌었을 그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렇게 그는 그의 말대로 ‘덜 폭력적인 교사’로 성장해왔다.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인권에 대해 끝없이 깨우치며 성장하는 교사의 모습이고 싶다는 김 지부장이다. 그는 지난해 5월 27일자로, 박근혜 정권이 6만 명의 전교조 조합원 중 9명의 해직교사가 조합원으로 활동한다는 이유로 법외노조를 확정하고 내려진 전임자 복귀명령에 불복해 직권면직 당했다.

“제가 한 선택에 후회는 없지만 학교로 돌아가고 싶어요. 작년엔 정말 끝도 없이 막막했어요. 이 사태가 장기화 돼서 학교로 돌아가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도 걱정이지만, 한편 이렇게 아이들과 떨어져 지내는 기간이 길어져 아이들의 변화에 발을 맞추지 못하고 소통하지 못하는 교사가 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제일 컸어요. 어쩌면 제도 때문에 내가 돌아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었죠.”

역사교사로서 국정교과서에 대한 그의 생각을 물었다. 강원도교육청은 강원도교육연구원 심의를 열어 공문을 시행하지 않았다.

“현재까지 전국적으로 단 3곳만 국정교과서를 신청했어요. 우리 도는 한 군데도 없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끼고요. 밝혀진 것만 650개가 넘는 오류가 있는 쓰레기 교과서입니다. 그런 교과서로 아이들에게 역사를 가르칠 수 없다는 것은 교사의 교육적 양심이에요, 건국절에 관한 예 하나만 봐도 알겠죠. 대한민국수립이 1948년 8월 15일이라는 것은 수립에 공헌한 사람은 그가 전에 친일을 했든 안했든 건국공로자가 되는 거고, 김구 선생님처럼 그것을 반대한 사람은 건국에 관해서는 반역자가 되는 꼴입니다. 학생들에게 잠재적으로 그런 시각을 갖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교사로서 거부합니다.”

올해 국정교과서를 주교재로 사용하겠다고 신청한 학교는 경북 문명고가 유일하다. 연구학교를 신청했던 경북지역 3개 학교 가운데 오상고는 재학생 반발로 하루 만에 신청을 철회했다. 경북항공고는 학교운영위원회를 열지 않아 지난 17일 오후 경북교육청 심의에서 탈락했다. 교육부는 20일 오전 국정교과서 연구학교 지정결과 등을 발표한다.<편집자>

이제 막 시작한 지부장의 자리. 임기는 2년이다.

“지금까지 선배 동지들이 만들어 놓은 전교조 강원지부는 원칙이 있는 지부입니다. 전 그런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길을 가고 싶어요. 전교조가 대중조직이다 보니 스펙트럼이 참 다양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지부는 건강한 선생님들이 대부분이에요. 우리 지부만의 그런 건강성을 훼손하지 않는 지부장이 되고 싶습니다.”

산적해 있는 많은 문제점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노동기본권을 가장 큰 슬로건으로 갖고 있다는 그다.

“현재 강원지부에는 2명의 해고 전임자가 있습니다. 그 2명의 복직이 가장 큰 이슈이고,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3명의 직원에 대한 전임자 인정이 우선돼야 합니다. 학교 안에서 교사들이 교육에 전념할 수 있도록 제도와 문화를 바꿔나가야 하는데 그렇다고 모든 교사들이 밖으로 나와 투쟁할 수는 없잖아요. 전임자로서 그 일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기회가 제게 주어졌으니 몰입해야죠.”

인터뷰 내내 학교와 아이들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 찬 그에게 가족 이야기를 물었다.

“아이들이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들어 자기들 이야기를 하는 걸 싫어해요. 아이들이 커가는 걸 곁에서 함께 해주지 못하는 건 늘 미안합니다. 특히 아내에게 미안해요. 요즘 건강이 많이 안 좋아져서 걱정인데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해내고 있으니 말이죠. 아이들이 어릴 땐 많이 뛰고 함께 놀았는데 지금은 그럴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죠.”

지부장이 되지 않았다면 올해는 스페인 순례자의 길을 자전거로 달리고 있었을 거라는 그. 그 계획을 2년 뒤로 미루고, 조합원들과 참교육에 앞장서서 창과 방패의 역할을 하고 있다. 지부장의 소임을 다 하고 나면 복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순례자의 길을 달리고 싶다는 그의 수줍은 고백에 응원의 마음을 얹어 본다. 순례자의 길을 달리는 키다리 아저씨의 모습. 그 과정의 기록을 학교에 돌아가 아이들과 나누는 선생님. 내가 상상해 본 그의 모습이다.

김애경 기자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